유학생 남자와의 장거리 연애
1. 시들어가는 꽃에 연애감정 한 방울을 주면?
시들어가고 있는 나의 시골 생활에서 그나마 한 줄기 빛과 같은 시간은 대도시에 가는 주말이었다. 2주에 한 번 오는 쉬는 주말마다 나는 4시간 거리를 운전해서 대도시에 1박 2일 동안 나들이를 가고는 했다. 시골마을의 작은 약국에 갇혀있다가 도시에 가면 콱 막혀있던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아니면 일터에서 멀어져서 그런지 대도시는 나에게 큰 재충전이 되어주었다.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에 혼자 들어가서 밥을 먹고 오기도 하고 큰 쇼핑몰에 가서 몇 시간씩 돌아다니며 구경하기도 했다. 또 미국 마트에서 쉽게 살 수 없는 깻잎, 무, 배추, 한국 배, 부추, 대파, 된장 등 한국 식재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한인 마트를 가면 너무 신이 났다. 시골에 박혀서 일만 하니 돈은 잘 모이고 있었지만 나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1박 2일의 대도시 나들이는 열심히 일한 나를 위한 최소한의 포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건 한국에서 론칭하여 미국 한인들에게도 알려지고 있던 소개팅 앱을 통해서였다. 같은 앱에서 1년 전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동갑내기와 교제를 한 적이 있는데 비행기로 5시간 걸리는 도시에 있던 그 분과는 한 번 만나는 것조차 큰 도전이었던 힘든 경험을 한 이후였다. 이건 통 연애를 하는 건지, 아이돌 팬미팅을 하러 가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연애하는 기분이 아니어서 각자의 길을 걷기로 하며 헤어졌던 게 몇 개월 전이었다. 그러나 한창나이에 외로웠던 나는 이번에는 그 앱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다시금 문을 두드렸다. 미국은 너무 땅이 넓어서 같은 나라임에도 뉴욕과 엘에이의 시차는 3시간이나 차이 나기 때문에 내 님이 타 주에 산다면 그야말로 다른 나라에 가는 것과 같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다행히 같은 주에 거주하는 한 남자가 앱에 떴다. 그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으로 당시에는 내가 살고 있는 주 바로 옆 주에서 치대를 다니던 1학년 유학생이었다. 나이도 동갑이고 살아온 환경도 비슷한데 인상도 참 좋고 말도 예쁘게 해서 한 달 동안 카톡을 주고받던 끝에 이 남자를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대화를 나눴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그 사람을 만나는 건 내게 큰 도전이었다. 혹시 다음 날 나의 시체가 토막이 나서 발견이 되지 않을까 심각하게 걱정하며 말이다. 하지만 나의 외로움은 그런 걱정을 가볍게 이겨낼 수 있게 했다. 내 인생의 도박을 이렇게 다시금 해보기로 했다.
당시 차가 없던 이 남자는 장거리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왔다. 그는 내 차 조수석에 타고는 운전하고 있는 나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사실 남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처음 봤을 때 남편에게 전혀 이성적 호감이 없었다. 그냥 착하고 성실해 보이는 동갑내기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 남자는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하는지 자꾸 나에게 질문을 했다. 거기에 질문소재들도 그냥 살아온 이야기, 여행 이야기, 한국 이야기 등 등 주제는 다양했지만 이성과 소개팅에서 할 만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사람은 좋아 보이지만 전혀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 이 꽝과 같은 남자에게 나는 이왕 이렇게 동갑 친구를 만나게 된 거 투어 가이드나 해 주자는 마음으로 경치 좋은 공원에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주고 맛있는 저녁도 먹으러 갔다. 이렇게 그와의 첫 번째 만남은 미적지근하게 끝이 났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남편은 내가 너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헤어지고 1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또 만나고 싶다며 언제 시간이 되냐고 연락이 왔다. 때마침 엄마가 미국에 와 계셨어서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왔는지 털어놓게 되었는데 엄마가 다 들으시더니 아직 유학생이라 신분이 걱정되고 졸업하려면 3년이나 남은 게 좀 걸리지만, 사람은 착해 보인다고 친구처럼 몇 번 만나보라고 설득하셨다.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한 번 더 만나보기로 했다. 두 번째로 본 이 남자는 사뭇 진지해 보였다. 싱글벙글 웃으며 농담스럽게 질문을 던지던 첫 만남 하고는 달랐다. 본인의 마음을 담아 카드를 써 주었는데 처음 받아보는 순수한 사랑 고백에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사실 깜짝 놀란 것 이상으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고백을 받는 것이 처음이었다. 어쩌다 보니 교제는 3번 정도 하였지만 예쁘다, 사랑한다, 좋아한다의 표현들을 이렇게 진심을 다해 표현하는 남자를 처음 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못 생겼고 뚱뚱하고 볼품이 없는데, 나를 이렇게 좋아하고 예뻐해 준다고? 이 사람은 내가 왜 좋지? 믿을 수 없었지만 동면에 들어갔던 연애 세포가 다시금 간질간질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2. 설레지만 난 유학생은 만나기 싫은데요
나는 이 남자가 준 연애 카드를 읽고 또 읽었다. 대화를 할 때는 좀 더 서투르고 말도 더듬는 사람인데 카드에 적힌 글들은 너무나 다정하고 시적이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글썽거렸다. 어린 시절부터 사랑이 결핍되어 있는 내가 처음으로 이런 사랑 고백을 받게 되니 감정이 북받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영주권을 위해 시골에서 이렇게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하루빨리 그만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나의 신분을 빨리 해결해 줄 수 있는 미국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인 남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졸업이 3년이나 남은 유학생이라니…
마음은 설레고 있었지만 나는 이성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하루하루 겨우 이겨내고 있는 이 직장에서 기약 없는 영주권 취득까지 희망 없는 근무를 계속하자니 내가 그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연애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안정된 신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내가 가장 필요한 것을 줄 수 없는 남자이기에 이어질 수는 없다. 그렇기에 정중하게 거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윽고 나는 이 남자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예쁘게 마음 고백해 준 건 너무 고마운데, 난 유학생은 만나기 싫어요!” 하며 엉엉 울었다. 캐나다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건너와 유학생부터 약사가 되었고 영주권 스폰서의 기회를 잡아 겉으로 보기에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나였지만 주어진 것을 감사하기에 당시의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큰 운이고 응당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지금 당장 힘든 것을 즐길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이 바닥나고 있던 것이다.
나의 고백을 들은 이 남자는 휴지를 건네주며 어쩔 줄 몰라했지만 내가 하는 말을 잘 귀 기울여주면서 토닥여주었다. 그러다가 그가 버스를 타고 돌아갈 시간이 다 되어 얼른 인사를 헸고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은 끝났다.
3. 처음에 못 알아봐서 미안합니다. 나의 귀인.
하지만 이후 이 남자의 구애는 끝나지 않았고 결국 나는 마음을 열게 되었다. 엄마가 내 나이는 결혼하기 어린 나이이니 지금 나이에 연애를 한다고 그 사람하고 결혼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며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 큰 이유였다. 교제를 하기로 시작한 후, 이 남자는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좋아해 주었다. 비록 차로 5시간 걸리는 거리에 사는 바쁜 치대생이었지만 매일 밤 꼬박꼬박 나의 퇴근길에 전화 통화를 해 주었고, 내가 주말에 도시에 나들이를 갈 때마다 시간 맞춰서 찾아오고는 했다. 교제한 지 한 달 뒤쯤에 이 남자는 차도 샀다. 여태껏 차가 없어 불편했어서 차를 사게 되었다고 말하였지만 사실 장거리에 살고 있는 나를 보러 왔다 갔다 하기 위해 차를 산 게 분명했다. 그리고는 눈보라가 치던 어느 겨울날에 새 차를 끌고 멋지게 양복을 차려입고 집 앞에 찾아왔다.
이 사람의 다정함은 참 빈틈없이 촘촘했다. 장거리 연애였지만 일상을 함께 한다는 느낌처럼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스며들었고 고된 일을 하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점점 이 사람이 좋아졌고 이윽고 그 마음이 깊어져 사랑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볼품없는 나를 사랑한다는 것 덕분에 나 자신도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랑을 받으니 일상에 활력소가 생겼고 웃는 일도 잦아졌다. 물론 직장 생활은 여전히 힘들었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퇴근길에 그와 전화하며 부하 직원들과 상사의 험담을 시원하게 털어놓으면 하루를 또 일할 힘이 났다.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나는 매일을 버텨낼 힘을 얻었다.
처음 남편을 만난 어느 가을날을 기억해 봅니다. 얼굴은 새 하얗고, 머리는 깔끔하게 2대 8 가르마, 깔끔한 금색 메탈과 검정 아세테이트의 콤비 뿔테 안경, 회색 코트를 입은 이 남자. 사람 좋아 보인다는 인상의 정석이었는데, 왠지 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남자의 순수하고 진실된 구애는 저의 마음을 움직였고 가장 행복한 연애가 시작되었어요. 호수처럼 잔잔하고 한결같은 이 사람이 마구 퍼주는 사랑에 저도 금세 사랑에 빠졌네요. 이 시기에 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 은둔 생활을 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사랑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다음 연재에는 제가 드디어 영주권을 받게 됩니다. 과연 영주권을 받은 후 탄탄대로의 길이 펼쳐졌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