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돌던 유학생 둘, 서로의 집이 되다

장거리 연애에 종지부를 찍다

by 티나

1. 3년 간의 장거리 연애


남자 친구와 나는 2주에 한 번 열리는 오작교를 타야 서로를 볼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내가 살던 곳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다른 주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각자 2-3시간을 운전하여 중간지점에 있는 대도시에서 데이트를 했다. 한국이라고 생각한다면 평창에 사는 여자와 대전에 사는 남자가 서울에서 데이트를 하는 거리와 비슷하려나?


우리 둘 다 집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데이트하는 주말이면 새로운 곳을 가보려 했다. 또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먹보들이라 맛집 리스트가 하나씩 늘고 있는 것에 새삼 뿌듯했다. 우리가 잘 통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둘 다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데 여행 얘기를 하자면 하루 종일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대화했다. 남자 친구의 방학시즌이 되면 나도 미리 회사에 며칠씩 휴가를 내고 함께 여행을 갔다. 비록 영주권 진행 중이어서 미국 밖을 나갈 수는 없어서 미국 내 여행만 가능했는데 다행히도 땅이 넓은 미국에 산다는 것은 그만큼 여행할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성탄 시즌에 갔던 뉴욕을 시작으로 봄방학에는 남자 친구네 집 근처를 여행하며 치대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고, 가을 방학에는 라스베이거스, 그랜드 캐니언, 브라이스 캐니언과 홀스슈밴드를 돌며 자동차 여행, 또 어느 방학에는 하와이, 그리고 오로라를 보려고 알래스카도 함께 갔다. 멋진 풍경을 탐미하며 함께 감탄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공감할 수 있고, 여행하다 만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느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은 유쾌하고 황홀한 일이었다. 남자 친구는 미국 생활 5년 차, 나는 10년 차였으니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둘이 함께여서 더욱 좋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장거리 연애가 1년이 넘어 3년이 되다 보니 서로에게 감정이 더욱 깊어져버린 우리는 헤어질 때마다 세상이 무너진 듯 슬퍼했다. 헤어질 때면 매 번 정말이지 가슴이 욱신욱신 아파왔다. 헤어진 후에는 또다시 고통스럽게 2주나 버텨야 이 사람을 다시 본다니 마음이 무너졌다. 영영 다시 못 볼 듯이 울며 헤어지는 날들이 반복되었고 우리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퇴근길에 있는 낙석이 잦은 터널을 지나가다 도로에 떨어져 있던 바위 때문에 꽤 큰 차 사고를 당했다. 참고로 내가 출퇴근을 했던 이곳에서는 꽤 자주 이런 사고가 일어난다. 약국 환자분의 지인은 이 내리막길에서 음주 운전을 하던 상대 차량에 치어 낭떠러지 호수로 추락해 사망하였다고 했다. 동네에서 차 사고가 빈번하기로 유명한 곳이라 매번 이 터널 근처를 지날 때마다 나는 긴장을 바짝 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무서워서 퇴근길에는 꼭 엄마나 남자 친구와 보이스톡을 했다. 이 동네 경찰들과 보안관들이 주기적으로 왔다 갔다 하며 내리막길에 떨어진 바위를 치워주고는 하였지만 바위가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예상이 가능하겠는가?


내가 사고를 당한 그날은 어느 어스름한 가을 저녁이었다. 작은 바위를 마주친 적은 꽤 많았지만 농구공만 한 바위를 마주친 적은 처음이었다. 터널을 지나면서 바위가 도로에 있는 것을 보았고 속도를 최대한 줄였지만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선을 넘어 살짝 피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멈추기에는 터널에서 혹시 차량 여러 대가 오고 있을지도 모르니 더 큰 사고가 날 것이 걱정되었다. 농구공만 한 바위… 차량 하부에 통과하는 높이는 아니었지만 내부가 손상될 정도의 높이는 아니라고 그 몇 초의 순간에 판단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그 바위 위를 지나가기로 했다. “쿵! 끼익” 소리가 나더니 바퀴에 펑크가 났고 시속 8킬로미터로 속도는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차의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놀란 나머지 비명이 나왔다. 그 순간 나는 과호흡이 와서 통화 중이던 남자 친구는 다급하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바위를 박아서 차가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다행히 뒤에 차량이 없었어서 천천히 핸들을 돌리며 갓길에 가까스로 차를 세웠다. 근데 하필이면 매번 통신 신호가 끊기는 구간이라 남자 친구와의 통화는 끊어졌다. 다급하게 나는 보험사에 전화했다. 개인 정보를 확인하고 위치를 알려달라는데 위치를 말하려는 순간 전화가 끊어져버렸다. 에라이!


스탭 약사에게 도움을 청할까도 고민해 보았지만 일단 차를 견인해야 하기 때문에 보험사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보험사에 다시 전화해 보니 내 목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천만다행으로 다시 통화하게 된 남자 친구. 나는 터널 지나서 바로 사고가 났다고 알렸고 보험사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니 대신 전화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다음날 시험을 앞두고 있던 남자 친구는 공부를 제쳐두고 나 대신 보험사에 전화해 주어 내가 사고가 난 위치를 구글맵으로 정확하게 전달했다. 몇 달 전 남자 친구가 나의 출퇴근 길을 와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위치 정보였다. 남자 친구는 보험사에 잘 전달했다고 전화를 해주었다.


갓길에서 한 시간쯤 지났을까? 지나가던 보안관이 내 차를 보고 바위 때문에 사고가 났냐며 다친 데는 없는지 물어봤다. 나는 다친 곳은 없고 보험사에 연락을 한 상태이며 견인 차량이 곧 온다고 했는데 언제 올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이 친절한 보안관 아저씨는 이 갓길은 좁아서 위험하니 1마일 정도 더 가서 조금 더 넓은 갓길에 차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천천히 이동할 동안 보안관 아저씨가 경광등을 켜고 뒤에서 천천히 함께 이동해 주었다. 그 사이렌 불을 보고 뒤에 오는 차들도 함께 천천히 이동해 주었는데 그 순간에 나는 다들 고마워서 감동의 눈물이 나왔다.


그로부터 1시간 정도 후, 그러니까 사고가 난 지 2시간 반 정도 후에 견인 트럭이 도착했고 나는 무사히 사고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통화는 다 먹통인데 남자 친구와의 통화는 비교적 잘 되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하다. 신이 도운 것 같다.



2. 연애의 끝은 헤어짐 아니면 결혼


3년 정도 이 사람과 연애를 하다 보니 치대 1학년이던 남자 친구는 어느덧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 전 우리는 알래스카에 오로라를 보러 여행을 갔다. 오로라를 보려면 깜깜한 밤부터 투어를 해야 해서 아침과 낮에는 호텔에서 영화를 보고 드라마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손호준과 장나라가 주연한 고백 부부를 정주행 하고 있었는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적 설정에도 현실적인 그 둘의 사랑이 크게 와닿았고 멀리 떨어진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는 드라마였다. 이 남자는 이 드라마를 보다가 나에게 울분을 터뜨리며 고백한다. 아마 얼마 전 내가 차 사고가 났을 때 가까이 있지 못해 바로 달려올 수 없었던 답답함이 커졌던 것 같다. 남자 친구는 노고를 인정해주지도 않는 힘든 직장에서 영주권 때문에 참고 일하는 나한테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싫다고 했다. 신분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바로 옆에서 챙겨줄 수 없는 먼 거리가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든다고도 고백했다. 남자 친구는 눈물 콧물 범벅으로 크게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3년 동안 이렇게 소리 내어 우는 남자 친구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 남자가 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조용히 해야 할 것 같다고 T 다운 발언을 하기도 했지만, 한참 우는 남자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도 따라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이 직장 생활을 버틸 수 있는 것은 당신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정말이지 그건 눈곱만큼의 의심도 없는 사실이었다.


휴양지에서 일하는 나는 회사에서도 환자들에게도 두들겨 맞는 동네 북 신세였다. 특히 여름휴가 시즌이면 호수에 레저용 배가 몇 대가 있는지 세어보며 출근을 했는데 배가 많이 떠있으면 그날은 어김없이 바쁜 날이었다. 더욱이 혼자 일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버거운 업무들이 계속되었다. 어느 힘든 주말에는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과로로 쓰러지면 과연 몇 시간 만에 발견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내가 과로로 쓰러지면 회사에서 약국 보조원의 근무 시간을 늘려주지 않을까? 아니면 약사 한 명을 더 고용해주지 않을까? 아니면 30분이라도 약국 문을 닫고 점심시간을 주지 않을까? 여러 가능성들을 생각했다. 미국 리테일 약사들은 다 같은 환경에서 회사와 환자들로부터 화살처럼 쏟아지는 요구들에 허덕이며 배고픔을 잊고, 또 오줌보를 참고 일을 하지만 유독 내가 힘들다고 느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니 체력이 바닥 나서였던 것 같다. 긴 출퇴근 시간과 긴 근무시간으로 잠을 잘 못 자고 근무 시간에는 휴식 시간이 없이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니 몸에서 죽겠다고 여기저기 신호를 보낸 지 오래였다. 회사에서 식사 시간이라도 잘 챙겨줬다면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이 쌓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 직속 상사와 실망스러운 대화 후 나는 더 의욕을 잃어갔다.


내가 버틴 것은 단연코 이 사람 때문이었다. 역대급 진상 환자가 와서 내가 이 동네에 집이 100채 정도가 있는데 네가 이 약국에 오고 서비스가 다 안 좋아졌다고들 한다고 모욕을 주고 간 어느 날은 내가 그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 (내가 오고 나서 서비스가 좋아졌다는 환자들이 많은데 우리 약국에 자주 오지도 않는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에게 서비스 질을 논하며, 미국 전체적으로 리테일 약국의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다름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약국 운영에 대해 처방전수와 보험 수가등 숫자밖에 모르는 경영인들 때문에 회사에서 자꾸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에 가장 큰 문제가 있는 것이며 당신이 집이 100채 있는 것으로 약국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바란다면 차별 대우를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의료인으로서 차별대우를 해줄 수 없으며 또한 당신은 다른 약국에 가시는 것이 피차 좋겠다)을 꾹 참은 것에 극대노하여 손을 떨며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였다.


또 어느 날은 약국 문을 열 때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쿵쾅 하더니 통증이 심해 숨을 못 쉴 것 같았다. 공황 장애였다. 그날도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하여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갈 거라며 울었다. 남자 친구는 내가 하소연을 하면 해결책은 전혀 제시해 주지 않았지만 내가 할 말이 없을 때까지 들어주며 맞장구쳐주고 함께 화내고 슬퍼해 주었다. 내 감정을 끝까지 쏟아내고 나면 여기까지 버텼는데 영주권 나올 때까지 왜 못 기다리겠냐는 마음이 생겼다. 정말 나는 이 사람 덕에 곧 굴러 떨어질 듯한 절벽에서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던 것이다.


남자 친구는 졸업 후 내 옆에서 가까이 있어주고 싶다고 했다. 우리 3년을 연애했는데 헤어지기 싫으면 결혼이 답이 아니겠냐고. 장거리 연애 청산하고 우리 이제 결혼하자고.


3. 유부 월드 입성


2020년 1월 28일 나는 3월 13일에 영주권 인터뷰를 오라는 편지를 받았다. 유학생인 남편이 졸업 후 미국에서 나와 함께 있으려면 내가 회사에서 진행 중인 영주권 서류에 남편 서류를 함께 보내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길이었다. 혹시 남편이 나의 영주권 때문에 나를 이용해 먹고 영주권을 따면 다른 사람으로 변해 이혼하고 숨겨둔 오랜 연인과 도망치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있는 배우자와 결혼한 후 영주권을 취득하면 이혼하는 사람들을 종종 들어왔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른바 결혼 사기. 하지만 깊이 사랑에 빠져버린 나는 남편을 전적으로 믿어보기로 도박한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 도박이 아닌 선택이 어디 있겠냐만은.


미국 법원에서 혼인 신고를 했던 2020년 2월 28일, 남자 친구의 친한 친구 2명과 나의 친구 2명을 증인으로 불러 간소한 결혼식을 치렀다.


“나 티나는 당신, 알렉스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오늘부터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며 함께할 것을 맹세합니다.”


친구가 결혼식 영상을 촬영해 주었는데 신랑은 싱글벙글 웃고 있고 나는 울먹거리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판사의 말에 따라 저 결혼 서약을 말할 때, ‘좋을 때나 나쁠 때나’의 부분에서 3년 동안 우리의 좋은 시절과 비교적 그렇지 못한 시절이 다 지나가며 그 시간들을 함께하고 견디며 견고해진 우리의 사이가 대견스러워 눈물이 펑펑 났다. 남들이 보면 여자는 억지로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보이지만 그 눈물은 분명 행복의 눈물이었다. 헤어지기 싫은 이 사람과 이제 법적으로 부부가 된다는 것. 10년 넘게 집 떠나 캐나다와 미국을 떠돌며 살던 나에게 드디어 미국에 집이 생긴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유부남, 유부녀의 세계인 유부 월드에 입성하였고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었다. 과연 이 남자는 사기꾼이었을까?



3년 반의 긴 장거리 연애. 그 시간들을 회고하자니 헤어질 때마다 매번 슬프고 힘들었지만 서로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대한 사랑의 힘은 모태 솔로 짠돌이 치대 유학생이 별안간에 차를 사게 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이 장거리를 운전하여 여자 친구를 보러 갈 용기를 주었습니다. 시골 약국에서 서툴게 일하고 있던 사회 초년생으로 신분을 해결해 줄 왕자를 찾고 있던 저는 절대 유학생은 안된다고 스스로 세운 조건을 무너뜨리고 이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가끔 연애 프로에 출연자들이 이런 사람은 안된다고 조건을 얘기하다가 막상 그 아닌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에게 빠져 좋아하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되면 저의 풋풋한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실 제가 결혼을 이 남자와 진작에 결심한 것은 연애한 지 3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정말 빈틈없이 사랑을 듬뿍 주는 남자에게 홀라당 넘어갔거든요. 저는 이 남자가 혹시 결혼 사기꾼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뒤로 한채 3년여의 한결같은 사랑에 설득당해 결혼할 용기를 내었습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이 남자는 사기꾼이 아니었어요. 사실 이 남자는 엄청난 사랑꾼입니다. 제 인생에 찾아와 주어 얼마나 다행인지요. 다음 주에는 영주권을 드디어 취득한 이야기와 코로나 19로 일상이 무너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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