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수치로, 전문성은 질서로 시장의 파도를 키웠다
연구원 회의실 불빛이
바람에 흔들렸다.
스크린에 떠있는 표에
김서준은 눈을 떼지 못했다.
“양지마을 6단지 23평형의 대지지분은...”
[601동 대지지분 : 9.80평]
[602동 대지지분 : 3.58평]
[603동 대지지분 : 7.23평]
손민석이 602동을 짚자,
김서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602동 대지지분이 왜 이렇게 작죠?”
손민석이 다음 슬라이드를 펼쳤다.
[첫째, 대지권 설정 시점 차이]
[둘째, 별도 시설 점유]
[셋째, 도로 기부채납/경계 후퇴]
[넷째, 설계 변경분 반영 누락]
[다섯째, 지반·대지 분할의 불균등]
“슬라이드 내용과 같이
시차·시설·경계·정정 누락·분할 불균등이
겹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준공 이후 등기 과정에서
서류의 시차가 생기고,
공용 시설 면적이 빠지며,
도로 편입·경계 후퇴가 반영되는 동안,
마지막 대지권 비율 정정이
끝까지 정정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는 짧게 덧붙였다.
“지금은 추정입니다.
오늘 대지권등록부·토지대장·등기부(표제부)
건축물대장·분필·합필 도면·사용승인 도면을
같은 기준일로 맞춰 보겠습니다.”
김서준은 과거 과천주공 사례가 떠올랐다.
대지지분의 행정 조정은 쉽지 않다.
그는 짧게 물었다.
“602동 시세는요?”
손민석이 대답했다.
“23평형, 12억 전후로
601동, 603동과
동일하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한기준이 법조문을 훑었다.
“조합 설립은 동별 과반 동의죠.
602동이 버티면 설립이 막힙니다.”
김서준이 말했다.
“종전자산은 지분이 가릅니다.
여섯 평 차이면,
평당 오천일 때 삼억.”
손민석이 얼굴을 찌푸렸다.
“같은 값을 주고 샀는데,
평가에서 삼억이 벌어지면
동의하긴 어렵죠.”
한기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지분 차이를 풀지 못하면,
양지마을은 멈출까요?”
김서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공유지분에 더해 대지지분까지,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그는 협의회장을 떠올렸다.
어디서부터 말문을 열 것인가 막막했다.
***
아파트 지하 창고를 개조한
임시 협의회 사무실 문을 밀었다.
협의회장은
오래된 소파의 모서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
반쯤 남은 커피가 식어 있었고,
재떨이엔 길게 탄 꽁초가 말라 있었다.
김서준은 서류철을 열어
공유지분 도면을 내밀었다.
“보시는 것처럼 한양과 금호가
지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공유자의 동의 없이는
그 어떤 의사결정도 불가능합니다.”
“뭐라고요?
공유지분자가 반대하면
진행이 안 된다는 겁니까?”
협의회장의 목소리 끝이
높아졌다.
김서준은 낮게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공유지분은 사람 사이의 합의입니다.
그래서 어렵습니다.”
협의회장은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았다.
“이 문제를 이제야 알다니…
주민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잠시 망설이다가
두 번째 서류를 꺼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펼친 표에 601·602·603의
대지지분이 일렬로 박혀 있었다.
“동일 평형인데 대지지분 차이가 납니다.
관리처분 시 권리가액이 삼억까지
차이 날 수 있습니다.”
협의회장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이럴 수가… 같은 단지인데,
삼억이나 차이가 난다고요?”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는 숨길 수 없습니다.
지금 설명하지 않으면,
나중엔 더 큰 갈등으로 돌아옵니다.”
협의회장은 의자에 다시 주저앉으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사실… 얼마 전,
딸아이가 아직 집이 없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6단지를 사라고
제가 권했습니다.”
“우리 딸은 내 말만 믿고
6단지 물건이 나오자마자 23평을 잡았지요.
물건이 귀해서,
십이억 오천까지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그게 하필 602동이라...”
협의회장의 손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오므라들었다.
수억 원의 손실을 떠올리자,
딸의 얼굴이 먼저 스쳤다.
“내가 사라로 권했는데....”
귓속에서 자기 목소리가 다시 났다.
책임이 가슴을 눌렀다.
공유는 벽이었고,
대지는 낭떠러지였다.
“이걸… 제 딸... 아니 주민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
김서준이 담담하게 말했다.
“가린 숫자는 커집니다.
지금 꺼내고,
행정의 시차와 오류를 설명합시다."
"사실을 말하고,
대응방안을 제시한 후,
선택은 주민에게 맡깁시다.”
그는 두 줄로 정리했다.
“첫째, 공유지분 정합성 점검입니다.
등기부·토지대장 교차 확인 뒤
즉시 이의신청에 들어가겠습니다.”
“둘째, 대지지분 공개입니다.
601·602·603동 세대별 표를
주민에게 전면 공개하고,
권리가액 시뮬레이션으로
‘최악’을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이후,
현실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겠습니다.”
김서준이 슬라이드를 넘겼다.
“대응방안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분담금 상한 입니다.
세대별 상한선을 고정합니다.
갑작스러운 부담을 막겠습니다.”
“둘째, 지분 보정입니다.
동과 평형에 가중치를 둡니다.
권리가액 격차를 단계적으로 줄이겠습니다.”
“셋째, 선택적 이탈 가이드입니다.
매도와 현금청산의 조건·기한·절차를
지금 이 자리에서 명확히 하겠습니다.
손실을 최소로 묶겠습니다.”
김서준이 설명을 마치자
협의회장이 고개를 들었다.
두려움이 남아 있었지만,
얼굴에 방향이 생겼다.
“자료… 정리해 주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설명회를 열겠습니다.”
노트북을 덮으며,
김서준이 말했다.
“설명회는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재건축 소식지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는 게 낫습니다.”
“소유자들이 6단지의 현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에 근거한
객관적 자료를 작성하겠습니다.”
협의회장의 눈빛에 신뢰가 스쳤다.
“역시 전문가시네요.
소식지라면 감정을 누르고,
생각하면서 현황을 이해할 수 있겠지요.”
그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AMD 연구원이 앞에 서 주십시오.
나는 뒤에서 밀겠습니다.”
***
양지마을 6단지에
재건축 소식지가 발송된 날,
우편함마다 서류봉투가 끼워졌다.
소식지는 두꺼웠고,
숫자는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공유지분 현황 및 대지지분 차이에 따른
권리가액 시뮬레이션’]
굵은 글자가 주민들의 눈을 붙잡았다.
밤이 되자 연구원 전화기가 불이 났다.
“왜 같은 평형인데
왜 권리가액이 다릅니까?”
“우리 집은 601동이랑
똑같다고 했잖아요!”
“이게 사실이면
집값이 다 무너지는 거 아닙니까?”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대지지분의 차이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각자의 재산을 가르는 칼날임을,
이제야 모두가 알게 된 것이다.
그날 새벽,
엘리베이터 앞과 문틀 사이로
얇은 전단이 촘촘히 끼워졌다.
〈내 집을 빼앗는 재건축, 절대 반대〉
〈선도지구 동의서 제출 금지〉
〈재건축반대 비상대책위 주민대표 최재영〉
반대는 쉬웠고,
선동은 가벼웠다.
쉬운 것이 사람들을 찔렀다.
다음날 아침 연구실 우편함.
비대위로부터 등기우편이 도착해 있었다.
[“주민이 아닌 AMD연구원은 빠져라”]
[“더 이상 관여 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
한기준이 봉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업체가 붙었군 ‘
전단의 문구, 발신, 시간표를
차례로 뜯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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