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서울인데, 왜 돈의 길은 서로 반대로 흐르는가
2008년 금융위기에서 시장은 한 가지를 먼저 보여줬다. 가격이 아니라 거래가 먼저 얼어붙으면, 그다음부터는 ‘비싸다/싸다’의 논쟁이 아니라 ‘살 수 있나/팔 수 있나’의 문제로 바뀐다는 사실이다.
2025년 12월 서울 아파트 시장도 비슷한 장면을 만든다. 거래량은 전월보다 늘었는데, 거래총액은 연중 최저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돈이 움직이는 곳은 9억 아래로, 멈춰 선 곳은 15억 위로 갈렸다(출처: 아시아경제·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 분석).
이 현상은 ‘양극화’라는 단어로 끝내기엔 너무 구체적이다. 질문은 하나다. 왜 같은 시장에서, 같은 시점에, 자금의 길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재편되는가.
다음은 감상이 아니라, 숫자와 조건으로 확인되는 판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 분석을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2025년 12월 서울 아파트 매매는 3,751건(해제거래·공공기관 매수 제외)으로 11월 3,337건보다 12.4% 늘었다. 그런데 12월 거래총액은 4조1,225억 원으로 11월 4조3,757억 원 대비 5.8% 감소해 연중 최저를 기록했다.
가격대별로 더 선명하다. 9억 원 이하 거래 비중은 11월 43.8%에서 12월 50.9%로 올라간 반면, 15억 원 초과 비중은 26.5%에서 17.9%로 내려왔다. 거래가 9억 이하 구간으로 몰리며 평균 거래가격이 약 13억 원대에서 11억 원대로 약 2억 원 낮아졌다는 해석도 붙는다.
지역은 더 노골적이다. 노원(81.3%), 구로(52.1%) 등은 거래량이 늘었고, 반대로 서초(-60.3%), 용산(-53.5%), 강남(-50.8%)은 줄었다. 이 변화는 ‘서울 전체’의 반등이라기보다, 서울 내부의 방향 전환이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왜 올랐나/왜 내렸나”가 아니라, “왜 이 가격대만 움직였나”이다.
이번 달의 핵심은 거래량 반등이 아니라 자금조달 통로의 재편이다. 기사 속 현장 코멘트는 이를 직설적으로 말한다. 생애최초·신혼부부 등 담보인정비율(LTV) 특례가 있어도 대출 한도는 최대 6억 원 수준에 머물고, 결국 “살 수 있는 집값이 사실상 9억 아래로 좁혀졌다”는 것이다. 대출이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대출이 허용하는 범위로 사람이 접히는 장면이다.
고가 구간은 다른 이유로 멈춘다. 15억 이상은 대출로 ‘완주’하기가 아니라, 현금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장이다. 그러니 금리 기대, 규제의 강도, 세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매수자는 “조금 더 기다리자”로 이동하고, 매도자는 “지금 팔 이유가 없다”로 버틴다. 거래가 사라지면 시세는 더 느리게 움직이고, 시장은 점점 ‘체감 불능’ 상태로 굳는다.
여기에 ‘증여’가 끼어든다. 12월 서울 집합건물 증여는 1,054건으로 전월 대비 47% 늘어 3년 만의 월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고, 강남3구는 187건에서 318건으로 70% 증가했다. 잠실동(10→42), 반포동(7→20) 같은 동 단위 증가가 따로 언급된 것은, 이 흐름이 분위기가 아니라 행동이라는 뜻이다.
거래는 ‘살 수 있는 사람’의 시장으로, 자산 이전은 ‘팔 필요 없는 사람’의 선택으로 나뉘고 있다.
이쯤 되면 9억 아래의 ‘영끌’과 15억 위의 ‘증여’는 단순한 계층 이야기라기보다, 제도·세제·금융이 만든 서로 다른 생존 방식이다.
9억 아래로 몰린 수요는 욕망이 커져서가 아니라, 불안이 커져서 움직인다. 지금 못 사면 더 멀어진다는 공포, 전세가 불안해질지 모른다는 초조함, 대출 조건이 더 나빠지기 전에 통과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한 묶음이 된다.
반대로 15억 위는 욕망이 줄어서가 아니라, 통제권이 남아 있어서 멈춘다.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시장을 ‘예측’하기보다 ‘관리’한다. 거래 대신 증여를 택하는 순간, 그들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세율·시점·가족 단위의 안전을 계산한다.
그래서 같은 서울인데도, 한쪽은 “지금 아니면 안 된다”로 움직이고, 다른 쪽은 “지금일 필요는 없다”로 멈춘다. 시장은 숫자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불안의 크기로 나뉜다.
이 불안의 분할이 계속되면, 서울은 ‘한 시장’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규칙의 두 시장’이 된다.
이번 데이터가 말하는 방향은 단순하다. 지금 서울의 위험은 폭락이 아니라, 가격대별로 전환 비용이 달라져 이동이 막히는 상태다. 9억 아래는 거래가 살아나며 경쟁이 붙고, 15억 위는 거래가 말라가며 기준점이 흐려진다. 거래가 줄어든 시장은 급매 한 건에 가격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다시 거래를 막는다.
또 하나의 파급은 전세다. 12월 전세 실거래 총액이 약 6조6,000억 원으로 매매의 1.6배에 달했다는 대목은 가볍지 않다. ‘내 집 마련’이 9억 아래로 좁혀지면, 그 밖의 수요는 전세로 밀리고, 전세는 다시 불안을 키운다.
시장은 지금 “오를까/내릴까”가 아니라 “갈아탈 수 있나/없나”로 재편되고 있다.
따라서 2026년을 읽는 기준점은 전망이 아니라, 이 전환 비용을 누가 감당하느냐에 있다.
결론은 예언이 아니라 조치다. 최소한 다음을 분리해 관리해야 한다.
1) 정책 결정자(금융·국토): ‘거래량’과 ‘거래총액’의 괴리를 상시 지표로 두고, 가격대별 자금조달 병목(대출 한도·심사 강화)의 영향을 공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2) 세제 설계자: 증여 급증이 ‘선제적 절세’인지 ‘매물 잠김’의 신호인지 구분해, 시장 유동성에 미치는 효과를 평가해야 한다.
3) 시장 참여자(매수자): 9억 아래의 매수는 “상승 기대”보다 “상환 여력”이 핵심이다. 금리 인하 기대는 계획이 아니라 변수로 취급해야 한다.
4) 시장 참여자(보유자): 15억 위는 거래가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출구가 좁아진다. ‘팔지 않는다’는 결정은 전략이지만, ‘팔 수 없다’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
이 네 갈래를 분리하지 않으면, 서울은 거래는 보이는데 체감은 사라지는 시장으로 오래 남는다.
※참고문헌
아시아경제. (2026). 강남은 자식 주고 강북은 영끌…서울 아파트 거래량 늘었는데 거래액 연중 최저.
국토교통부. (2025). 부동산 거래관리시스템(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공개자료.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2025). 부동산 등기 통계(증여 등 원인별).
한국은행. (2025). 통화정책방향 및 기준금리 관련 공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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