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는 상가를 더 이상 품지 않는다

공실이 도시를 비울 때, 우리는 어떤 공간을 잃는가?

by 김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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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이 닫히면 거리가 잠긴다


1990년 일본 버블경제가 붕괴된 이후, 지방 도시의 중심 상권에서 이상한 풍경이 시작됐다. 가게마다 셔터가 내려지고, 한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이 현상을 '셔터 상점가(シャッター商店街)'라 불렀다. 경제 수축이 빚어낸 풍경이었지만, 그 안에는 더 깊은 질문이 숨어 있었다. 상권이 무너진 것인가, 아니면 상권이 설계될 때부터 이미 그 안에 붕괴의 씨앗이 심겨 있었던 것인가.


5년 전, 세종시 금강 수변에서 9억 원짜리 상가를 분양받은 한 투자자는 지금도 매달 200만 원 가까이 이자와 관리비를 지출하고 있다. 임차인은 단 한 명도 없다. 분양받은 날부터 지금까지, 그 가게에 불이 켜진 날이 없다. 단지 안에서 문 닫힌 가게가 영업 중인 가게보다 훨씬 많은 건물. 이것은 예외적 불운이 아니다.


그 셔터 뒤에서 한국의 단지 상가가 지금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지금의 공실은 시장의 실패이기 이전에, 설계의 실패가 누적된 결과다.


2. 숫자가 말하는 현재의 풍경


한국부동산원의 2025년 4분기 상업용부동산 임대동향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9.1%로 전년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상가 열 곳 중 거의 한 곳꼴이 비어 있다. 그러나 전국으로 시선을 확장하면 사정은 더 가파르다. 전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13.8%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늘었다. 부산 15.4%, 대구 18.1%, 광주 16.2%, 울산 17.2%, 세종은 24.2%다.


세종시의 수치는 하나의 장면으로 구체화된다. 2026년 2월 대전지방법원에 등록된 경매물건을 보면, 나성동의 한 상가는 감정평가액 9억4600만 원에서 4차례 유찰돼 2억2700만 원에도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진동의 9억4300만 원짜리 상가 역시 4차례 유찰된 뒤 2억200만 원에 다섯 번째 경매를 앞두고 있다. 감정가의 4분의 1 수준에도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이 상황이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을 바꾸고 있다. 강남구 대치우성1차아파트 재건축조합은 단지 내 상가를 다시 짓지 않기로 결정했고, 상가 조합원들은 상가 대신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의견을 모았다. 송파구 잠실동 우성4차아파트 재건축조합도 같은 방향을 택했다. 여의도 공작아파트는 상가 면적을 기존 1만4000㎡에서 절반 이하로 줄였다.


정책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비주거시설 의무설치 비율을 연면적 기준 20% 이상에서 10% 이상으로 낮췄다. 준주거지역에서는 상가 없이 100% 아파트만 짓는 것도 이제 가능하다. 광주시는 2024년부터 주상복합 내 비주거 의무비율을 15%에서 10%로 낮췄고, 세종시는 아예 상업용지 매각에 제동을 걸고 미매각 용지를 주택·공공용지로 전환하는 방침을 내놓았다.


법이 비율을 완화하고 시장이 상가를 밀어내는 두 힘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지금, 도시 안에서 상가는 무엇이었는가를 다시 물어야 한다.


3. 지으면 온다는 전제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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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경제와 부동산의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실무에서 부동산 개발과 금융이 교차하는 복잡한 퍼즐을 풀어가며,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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