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는 시작이고, 시간은 비용이다
비는 멎었고,
하늘은 젖은 금속처럼 빛났다.
포인트 사기 사건으로 흔들렸던 플랫폼은,
빈틈을 조이고 검증을 앞세우며
다시 일어섰다.
AI가 사진의 숨은 시간을 꿰뚫었고,
잘못된 손길은 막혔다.
남은 것은 숫자였다.
가입자는 다시 3만을 넘어섰고,
중개사들의 문의가
밤마다 밀려들었다.
새 정부는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대규모 공급을 약속했다.
신도시 개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빈 땅이 없는 현실에서,
해법은 재건축이었다.
정부는 규제를 풀고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지정을 통해
사업기간 10년을 5년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용적률을 올리고,
절차는 줄였다.
분당, 일산, 평촌, 중동, 산본.
오래된 단지의 게시판마다
그 소식이 번졌다.
저녁 뉴스 첫머리에,
1기 신도시 규제완화가 올랐다.
연구원 네 사람이
회의실 불을 켰다.
테이블 위엔
다섯 곳의 지표가 펼쳐졌다.
세대수, 기존 용적률, 평균 분양가,
매매 시세, 동의율 추정치.
프로젝터 렌즈가 켜졌다.
화면에 1기 신도시 개요표가 떴다.
사업성 판단기준은
기존 용적률과 세대수였다.
[분당 : 184% / 97,580세대]
[일산 : 169% / 69,000세대]
[평촌 : 204% / 42,047세대]
[산본 : 205% / 41,397세대]
[중동 : 226% / 42,500세대]
김서준이 표의 맨 위와 맨 아래를
번갈아 가리켰다.
“기존 용적률이 낮을수록
개발 여지는 커지고,
일반분양이 많을수록
사업성은 좋아집니다.”
한기준이 스크린을 보면서 덧붙였다.
“지표로만 보면 일산이 169%.
개발 여력이 가장 큽니다.
대지지분도 비교적 넉넉합니다."
"다만, 시세가 분당보다 낮은 것이 걸립니다.”
박영재가 표의 가운데를 짚었다.
“분당은 184%로
개발 여력은 일산보다 작지만,
시세가 받쳐 줍니다.”
“같은 면적을 팔아도 분양가 총액이 커서
권리가액이 높게 나옵니다.
비례율이 높을 것으로 보여
주민 분담금이 낮아져 속도가 붙겠습니다.”
손민석이 아래 줄을 훑었다.
“평촌 204%, 산본 205%, 중동 226%.
이미 용적률이 높습니다.
추가 완화 효과가 제한적이라
개발이익이 낮고,
분담금이 큽니다.
중동은 특히 쉽지 않겠습니다.”
김서준이 결을 정리했다.
“정리합니다.
일산은 지표상 유리하지만
가격 억제로 수익 회수가 더딥니다.”
“분당은 시세가 뒷받침돼
체감 사업성이 가장 좋습니다.
평촌·중동·산본은 분담금 부담이 커서
속도가 떨어집니다.”
스크린 속 표가 한 번 더 빛났다.
결론은 짧았다.
“분당에 집중합시다.
공인중개사 네트워크로
단지별 현황과
최근 주민 동의율부터 파악하죠.”
한기준이 받았다.
“분당 중개사들이 올린 현장 정보가
이미 플랫폼에 쌓였습니다.
바로 분석 가능합니다.”
박영재가 웃으며 거들었다.
“이 데이터베이스가
우리 연구원 플랫폼의
경쟁력 아닙니까.”
***
정부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선정에서
주민 찬성 동의율을
최우선 지표로 못 박았다.
'동의율로 확인해 지정하겠다'는
발표가 나가자,
분당구청은 즉시 설명회를 열었다.
아침 햇살이 스크린 위로
부드럽게 번지던 구청 대강당.
관계 공무원과 기자단,
주민 대표들이 자리를 채웠다.
무대 뒤 스크린에는
‘선도지구 공모 대응 계획’ 제목이
떠 있었고, 첫 슬라이드가 조용히 넘어갔다.
구청 도시계획과 과장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조명이 스크린을 훑고,
슬라이드가 바뀌었다.
“오늘 분당 1기 신도시 정비 선도지구 공모
대응 계획을 발표합니다.”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통합 재건축 추진 단지에는
선도지구 평가 시 가산점을 부여하도록
기준을 설계했습니다.”
“예컨대 4개 단지 이상 통합은 최대 4점,
3,000 가구 이상 참여는 최대 15점의
점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탁 방식 또는 공공시행 방식을
채택한 경우 추가 2점을 부여합니다.”
“우리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통합 재건축은 사업 규모와 효율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기반시설·교통망·공공시설 배분에서도
일관성을 갖출 수 있습니다.”
스크린의 ‘가산점’ 표에 시선이 모였다.
앞줄 대표들이 서로 눈치를 살폈다.
스크린 좌측 상단엔
‘선도지구 접수 마감 D-18’이 켜졌다.
누군가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가 뒤로 밀리는 건 아닌가…
시간이 별로 없는데....”
낮게 새는 혼잣말이 이어졌다.
휴대전화 카메라에 기준표가
연달아 복제됐다.
발표 자료의 키워드들이
주민들의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며들었다.
***
분당은 모든 단지가
관리사무소 불이
밤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엔
간이 테이블이 놓였다.
동대표, 부녀회, 그리고 통장과 반장이
동을 돌며 벨을 눌렀고,
복도마다 인감도장 찍는 소리가
탁탁 울렸다.
동의서는 층계를 타고 올라갔고,
각 단지는 하루라도 빨리
선정 기준을 채우려
초여름을 불태우고 있었다.
양지마을 주민 회의도
금세 뜨거워졌다.
한양 동대표 박노형이 먼저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역세권 프리미엄, 왜 나눕니까?
단독 추진이 합리적입니다.”
금호 총무 장수연이 받아쳤다.
“학교와 공원은 우리가 더 가깝습니다.
통합이면 권리가액 총액이 커지고,
사업이 빨라집니다.
속도와 볼륨은 통합에서 나옵니다.”
박수와 야유가 얽혔다.
각자의 주장만이 허공을 갈랐고,
합의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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