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은 중립이 아니다
유튜브를 켰는데,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이 떠 있다. 새로 산 운동화를 검색하자마자, 인스타그램엔 광고가 떴고, 심심하던 차에 넷플릭스가 딱 내가 보고 싶을 법한 드라마를 추천해준다.
우리는 ‘내가 고른 것’처럼 느끼지만, 실은 대부분 ‘보여진 것’ 중에서 선택한다.
이제 문제는 이거다. 그 선택의 전제가, 누구의 손에 의해 설계되었는가?
우리는 플랫폼에서 자유롭게 소비하고 검색하며 소통한다고 믿지만,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될지를 이미 결정해놓았다. 알고리즘은 기계가 아니다. 가치판단 없는 수학이 아니다. 그것은 기획된 방향성이고, 데이터를 기준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도록 설계된 전략이다.
AI가 추천하는 ‘나를 위한 콘텐츠’는, 실은 나의 데이터와 나와 닮은 사람들의 행태를 기반으로 한다.
알고리즘은 '공정한 중개자'가 아니라, 가장 돈이 되는 감정—분노, 자극, 두려움—을 우선적으로 배치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체류 시간을 늘리고, 전환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플랫폼은 우리의 감정 구조를 설계한다.
온라인에서 분노는 더 자주 보이고, 혐오는 더 크게 들린다. 플랫폼은 사용자의 반응을 통해 데이터를 얻고, 그 데이터로 다시 반응을 조작한다.
우리는 선택한다고 믿지만, 이미 제한된 메뉴판에서 고르고 있는 중이다.
이 구조의 가장 큰 문제는, 설계자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당신의 피드에 뜬 것’은 당신이 원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당신을 가장 오래 잡아두기 위한 설계’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고,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플랫폼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다.
우리는 더 이상 정보의 바다에 떠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설계된 연못 안에 있고, 그 안에서만 헤엄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곳엔 탈출구가 없다.
나의 피드, 나의 추천, 나의 소비는 사실상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상업 모델의 부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무엇을 보지 못했는가'를 더 자주 물어야 한다.
어떤 정보는 필터링되고, 어떤 감정은 강조된다. 알고리즘은 모든 것을 연결하지만, 동시에 아주 많은 것을 잘라낸다.
그리고 그 편집의 기준은 ‘공공성’이 아니라 ‘수익성’이다.
플랫폼은 우리 삶의 구조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그 구조는,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닮아가게 만든다.
기술은 중립이 아니다.
기술은 방향이 있다.
그 방향을 의심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선택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