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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철학이다

탈중앙화는 인간 욕망을 넘을 수 있는가?

by Simon park

처음 비트코인을 들었을 땐, “디지털 금”이라는 말이 신기했다.

금처럼 발행량이 정해져 있고, 누구도 조작할 수 없다는 설명.

통화량을 늘려 물가를 올리는 중앙은행과 달리, 비트코인은 중립적이라고 했다.

그 말이 주는 신비감은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하지만 이상했다.

화폐라면서 왜 이토록 변동성이 큰가? 결제 수단이라면서 왜 사람들은 들고만 있나?

국가를 믿지 못해 만든 것이라면서, 왜 결국 가장 탐욕적인 방식으로만 거래되는가?


비트코인은 철학적 질문을 품고 있다.

화폐란 무엇인가?

신뢰는 어디에서 오며,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전통적인 화폐는 공동체의 약속이다.

모두가 신뢰하기에 쓸 수 있는 종이조각.

그런데 그 신뢰는 ‘국가’라는 시스템이 보장해왔다.

반면, 비트코인은 국가를 제거하고도 신뢰가 가능한 구조를 설계했다.

그 기술적 기반은 블록체인이다.


이론은 그럴듯하다. 그런데 현실은 묘하다.

비트코인은 중앙이 없다고 하지만,

거래는 대형 거래소 몇 곳에 집중되고,

채굴은 이미 특정 자본 집단의 전유물이 되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꿈꾼 탈중앙의 이상은 점점 현실 속 자본 집중의 그림자에 묻힌다.

비트코인은 권위 없는 시스템을 만든 대신, 탐욕의 무대가 되었다.


우리는 시스템을 의심했지만, 인간의 욕망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기술보다 먼저 철학이 필요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화폐를 만드는가?"

많은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자유의 화폐라 말한다.

국가가 가로막을 수 없는 송금, 검열 없는 거래, 자산 통제에서의 해방.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자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비트코인을 이해하려면, 철학적 질문에 직면해야 한다.

탈중앙화는 인간의 이기심도 분산시킬 수 있는가?
무엇이 신뢰를 만드는가? 기술인가, 윤리인가?

자유로운 시장은 공정한가, 아니면 더욱 비윤리적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다면, 비트코인은 단지 또 다른 ‘금’일 뿐이다.
전쟁, 불안, 불평등의 시대에 ‘숨기는 자산’으로 기능할 뿐이다.


기술은 항상 중립이라지만, 기술이 만들어내는 구조는 중립이 아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새로운 권력을 낳는다.
우리가 만든 기술이 우리를 다시 지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비트코인은 철학이다.
그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 채 코인을 쥔 손은, 투기판의 칩을 쥔 손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건 부의 비밀화인가, 아니면 신뢰의 재구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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