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도착한 첫날,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시작된 새로운 하루

by 르르베

여행으로 왔을 때의 설렘도, 출장으로 왔을 때의 기대감도 아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무거운 감정이었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짐 열두 개를 끌고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는 그 감정을 느낄 여유도 없었다.

카트 위에 겹겹이 쌓인 캐리어처럼,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곳의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고, 이상하게도 서울의 하늘이 더 맑게 느껴졌다. 출국 전 마지막으로 먹었던 따뜻한 순대국밥이 벌써 그리워졌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계좌를 열고,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사고, 집을 계약하고. 하나씩 해내야 할 일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새로운 시작 앞에 서 있다는 사실보다, 당장 처리해야 할 현실들이 더욱 빠르게 다가온다.


그래도 알고 있다. 아마 두 달쯤 지나면, 내 집에서 내 차를 타고 출근하는 일상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지고 결국 나만의 안정된 하루가 자리 잡을 거라는 걸.


그날을 떠올리며, 지금은 하나씩, 천천히 해보기로 한다.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질 이 하루들을 믿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