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않아도 배움이 되는 공간들
한국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큰맘 먹고 가야 하는 곳에 가까운 곳이었다. 조용해야 하고, 타인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고, 어쩐지 내가 이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스스로를 점검하게 되곤 했다.
브리즈번에서는 그런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전시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누군가는 같은 작품 앞에 오래 머문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전시를 즐긴다.
이곳에서는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지 보다 그 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접근의 문턱은 낮고, 환대는 넓다. 시내에서 가장 전망 좋은 명당에는 어김없이 무료로 개방된 박물관과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좋은 자리를 가장 많은 사람에게 내어주는 배려다.
도서관 역시 마찬가지다. 브리즈번 한복판,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할 것 같은 곳에 통유리 너머로 강물을 바라보며 책을 읽고 숨을 고를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
호주인들은 왜 이토록 문화 공간에 진심일까? 아마도 이들은 예술과 문화를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사치가 아닌, 삶을 지탱하고 마음을 숨 쉬게 하는 하나의 생활 인프라로 보기 때문이 아닐까?
변화는 아이에게서 먼저 나타났다. 아이가 먼저 박물관과 미술관에 가자고 한다. 퀸즐랜드 뮤지엄의 Spark Lab에서는 아이는 마음껏 실험하고, 실패하며, 다시 도전한다. 미술관 곳곳에 비치된 드로잉 도구들은 아이를 관람객에서 창작자로 바꾼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그림을 그렸다.
아이와 함께 문화를 향유하며 깨달았다. 작품을 '이해했는지'보다 중요한 건 '어떻게 반응했는지'라는 것을. 아이는 전시를 훑어보는 짧은 찰나에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흡수하고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에서 과학을 놀이로 만났고, 미술관에서 우리만의 그림을 그리고, 도서관에서 체스를 두며 오후를 보냈다.
굳이 배우려 애쓰지 않아도, 그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었다.
언젠가 아이가 이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이 공간들이 남긴 다정한 감각만큼은 아이의 내면에 아주 오래도록 머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