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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은 끝나지 않았다

by 홍종원

디스토피아를 그린 영화들을 보면 익숙한 장면이 반복된다. 〈매드 맥스〉에서는 물과 연료를 독점한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헝거게임〉에서는 자원을 빼앗긴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다. 법과 도덕은 무너지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져 간다. 소수만 풍요를 독점하게 되고 경쟁은 생존 그 자체가 된다. 이런 세계에서 힘이 곧 질서가 된다는 사실은 허구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목격한 현실의 또 다른 얼굴이다.



역사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국의 삼국시대와 일본의 전국시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세력이 경쟁하던 시기에는 전쟁과 혼란이 일상이었다. 성마다 불길이 치솟고 국경마다 피가 강처럼 흘렀다. 생존이 모든 가치를 집어삼켰고 평화는 항상 마지막에 등장했다. 결국 더 강한 폭력이 더 약한 폭력을 짓눌렀을 때에야 하나의 질서가 세워졌다.


오늘의 세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는 세상을 연결하지만 전쟁은 멈추지 않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는 수많은 민간인이 죽어가고 중동에서는 보복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동아시아에서도 대화 대신 군비 경쟁이 선택되고 있다. 각국은 평화를 말하지만 선택의 순간에는 언제나 자국의 이익을 앞세운다.


과거가 어떤 비극을 불러왔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위기 앞에서는 늘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정말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인가.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억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기억하고도 선택을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시대의 전면전은 승자조차 남길 수 없다. 한 나라의 위기가 전 세계의 위기로 확산되는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각국은 여전히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지킨다”라고 주장하며 군사력을 강화한다. 오늘의 세계는 더 위험한 춘추전국이다.


문제는 전쟁뿐만이 아니다. 기후 재난과 불안한 미래, 사회 불평등 확대, AI와 자동화의 윤리 문제, 자원 경쟁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한 나라의 정책이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인류는 이미 단일 국가 단위의 대응으로는 위기를 통제할 수 없는 시대에 들어섰다. 과연 개별 국가 중심의 질서로 이 세계를 지켜낼 수 있는가?


우리는 해답의 단서를 가지고 있다. UN이라는 국제기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UN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 제재를 실행하지 못하고 갈등을 조정해도 실질적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UN이 지금과 같은 한계 속에 머문다면 세계의 갈등은 멈추지 않는다.


이제 UN은 협의 기구를 넘어 인류 전체의 안전을 책임지는 ‘세계의 정부’로 진화해야 한다. 국경 너머에서 법을 집행하고 전쟁을 막고 지구적 위기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UN이 가져야 한다. 힘이 아니라 법이 국제 질서를 만드는 시대가 필요하다. 국가 위의 질서 없이는 전쟁과 위기를 장기적으로 멈출 수 없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는 “우리는 세계의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더 이상 개별 국가의 힘만으로 안전을 지킬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서로를 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공동의 질서를 세워야 한다. 협력 없는 평화는 없다.


역사를 보면 큰 질서가 만들어진 순간마다 언제나 큰 비극이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은 국제연맹을 만들었고 2차 세계대전은 UN을 탄생시켰다. 이제는 되묻게 된다. 정말 또 한 번의 대재앙을 겪은 후에야 ‘하나의 질서 아래, 하나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인가. 우리는 비극 후에야 깨닫는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디스토피아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국가 중심의 시대’에서 ‘인류 중심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어떤 질서를 세울지, 어떤 신뢰를 구축할지, 어떤 협력을 선택할지가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 미래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지난 역사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결정된다. 갈등을 전쟁으로 풀어 춘추전국의 시대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인류 중심의 시대로 넘어가, 세계정부로서의 UN을 만들어 대화와 타협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인가? 지금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달렸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가? 지금 이 질문에서 미래가 시작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 제가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이어가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 제 삶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내용도 아니고, 이 글이 어쩌면 너무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실천되지 않는 생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뉴스를 보거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특히 요즘처럼 강대국들이 각자의 이익을 우선하며 국제 질서를 흔들 때면, 국가를 넘어선 더 강력한 조정 장치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UN과 같은 국제기구가 하나의 세계 정부처럼 기능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저 자신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적어보는 이유는, 희미하게라도 떠오른 생각들이 언젠가 더 나은 방향을 향한 작은 씨앗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 생각난 만큼, 조심스럽게 글로 남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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