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호흡기내과
오늘은 호흡기내과 컨퍼런스 및 회진에 참여한 첫날이다. 어제도 근무하긴 했지만, 왠지 처음으로 제대로 인턴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새벽5시에 일어나서 인계받은대로 환자들 ABGA를 다 해서 병동에 갖다주고, 환자 명단을 10장 출력한 후 7시 5분전부터 호흡기중환자실 스테이션에서 대기했다. 7시쯤 되니 교수님 세분, 펠로 선생님 한분, 그리고 전공의 선생님 두분이 오셨다. 제일 위 교수님께서 '새로 온 인턴선생님이에요?'라고 물으셔서 관등성명을 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다들 큰 관심은 없으신 것처럼 보였다.
컨퍼런스는 1년차 선생님이 명단에 있는 환자를 한명씩 간단히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3년차 선생님은 해당 환자의 흉부사진이나 CT 사진등을 띄워서 관심부위를 교수님들에게 보여드렸다. 교수님들은 해당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에 대해 논의하고, 여러가지 지시를 주셨다. 처음 2명 정도는 좀 흥미로웠고, 호흡기내과에 대한 관심을 가져볼까? 라는 생각까지도 잠깐했다. 그런데 3명째부터 점점 지겨워지더니 한 30명 넘어가는 시점부터는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학생시절에 병원 실습돌면서 봤던 다른 과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평화로웠다. 교수님들이 펠로 선생님이나 전공의선생님들에게 욕을 하거나, 저주 하거나 협박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좀 더 지겨웠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환자의 상태, 새로 찍은 사진 및 치료 계획을 점검하고 나서, 다같이 일어나서 회진을 돌았다. 나의 역할은 전체 팀이 다음 어디로 갈지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다음 병실이 201호이고, 이 방에 호흡기내과 환자가 두명이 있다면, 나는 잽싸게 먼저 들어가서 첫 환자 침대앞에 먼저 서 있는다. 대부분 6인실 아니면 5인실이니까 미리 환자 위치를 예습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미리 위치를 숙지하고, 명단 이름 옆에 시계방향 순서대로 했을 때의 순서를 숫자로 써놓는다.) 1년차선생님이 내 위치를 보고 와서 환자를 발표했고, 교수님은 환자와 대화한 후 1년차선생님에게 오더를 주셨다. 나는 그동안 슬금슬금 다음 환자 앞에 서있는다. 한마디로 인간 내비게이션 역할이다. 전혀 의학적인 임무라고 할수는 없으나, 어쨌든 가운을 입고 뭔가 중요한 일을 맡은 듯한 표정으로, 여러 명의 의사들의 선두에 서서 돌아다닐 수 있었다.
회진이 끝나고 교수님들은 흩어지셨고, 나는 나머지 선생님들을 따라서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수를 샀다. 다른 선생님들 다 가시고 1년차선생님과 둘이 응급실 앞 벤치에서 담배를 폈다. 나도 펴도 되는지 잠깐 고민을 했는데, 1년차 선생님이 편하게 피라고 하셔서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나도 폈다.
1년차 선생님은 나이가 좀 많으신 듯하다. 학교다닐때도 한두번 뵈었던 것 같은데, 음악동아리나 운동동아리를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다. 선생님도 1년차가 처음이라서 힘들텐데, 나이가 많으셔서 그런지 나에게 신경질을 내거나 간호사들과 별다른 갈등도 없이 스테이블한 모습이었다. 컨퍼런스 전에 내가 뛰어다니면서 ABGA를 할 때, 선생님은 병동 컴퓨터에서 환자파악을 했는데, 초췌한 모습으로 'don't worry be happy'를 콧노래로 하면서 슬슬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생각해보면 1년차 초반에 허밍할 곡은 아닌데.
낮에는 콜을 좀 받고, 포텍스 드레싱을 몇 개하다가, 오후 회진을 돌았다. 오후 회진은 펠로선생님이 도셨는데, 교수님들이 안계셔서 한결 편한 분위기였다. 펠로선생님은 젊은 여자선생님이었는데, (아마도 나이는 1년차선생님과 비슷하실 것 같다) 상당히 세세하게 환자를 치료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녁은 혼자 직원식당에서 먹었는데 찜닭이 나왔다. 학교다닐때는 찜닭 나오는 날에는 식당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가서 다리랑 날개만 골라먹었었는데. 오늘은 일하다 늦게가서 그런지 맛있는 부위가 별로 없었고, 많이 식어있었다. 그래도 어제 카레보다는 훨씬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