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전구기!

이 또한 과정이리라

by 펠릭스

회사에서 근무하며 지내던 어느 날, 후배와 산책을 하던 중 자신은 개발을 잘 못하는 거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가만히 듣고 난 뒤, 조용히 제 이야기를 해봅니다. 이내 곧 후배는 기운을 차리고 별거 아니란 듯 일을 이어갑니다. 무슨 이야기였냐면, 바로 이 이야기였죠.






김해로 이사를 하고 난 뒤, 어머니께서 저를 컴퓨터 학원에 데려다주셨습니다. 혼자 집에 있는 제가 신경 쓰이셔서 집 근처에 있는 학원을 찾으셨는데 마침 그게 컴퓨터 학원이었던 듯합니다. 그렇게 저는 컴퓨터와 첫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곧 적응하며 잘 다니게 됩니다.



image.png 인터넷에서 찾았는데, 요런 느낌이었던 거 같은데..



처음 만난 컴퓨터는 지금의 컴퓨터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DOS라고 하는 검은색 화면에 글자를 쳐서 무언가를 해야 했고, 마우스는 없었습니다. 명령어를 외우고, 타자연습 프로그램을 켠 뒤 타자 연습을 하는 게 학원 수업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영어 공부도 했었는데(Bee의 B!! 는 아직도 기억나네요), 아마 제가 가장 나이가 어려서 했던 특별한 수업이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1년, 2년. 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컴퓨터도 익숙해졌으니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합니다. 바로 워드 프로세서 3급 자격증 따기!! 3급은 크게 어렵지 않으니, 취득하기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하시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잠시 문제를 내볼까요? 다음 키워드를 듣고 질문에 대답해 보는 겁니다. "기억력이 나쁘고 산만한", "노는 걸 좋아하는 나이", "게임 외에는 흥미 없음". 자 뭐가 떠오르시나요? 지금 글 쓰는 작가를 떠올리셨다면, 정답입니다. 어째 지금도 다를 게 없는 거 같지만, 딱 저랬습니다. 학원에서 펼쳐진 여러 이야기들 중 혼난 이야기가 절반일 정도네요.



image.png 수업이 끝나면 게임을 했습니다. cd와 dir 이란 명령어는 확실하게 외웠죠.



당시의 저에겐 오랜 시간 집중해서 하는 공부는 매우 매우 어려웠습니다. 흥미가 없으니 이해도 되지 않았죠. 자격증을 따기 위해 또래부터 형, 누나까지 다 같이 모여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도 못하는 친구들(저....ㅎ)은 추가 보강을 하기도 했었죠.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시험을 칩니다. 결과는? 당연히 떨어졌죠. 같이 시험을 친 형, 누나들은 대부분 합격하고 저랑 친구 정도만 떨어집니다. 자, 아직까지는 변명의 여지가 있습니다. 친구도 떨어졌으니까요. 그렇게 두 번, 세 번, 네 번.... 그리고 일곱 번. 같이 공부를 시작하신 분들은 모두 자격증을 가졌을 즈음, 일곱 번째 시험에서 또 떨어졌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나쁘단 이야기를 했던가요? 이 정도로 시도했으면 찍어도 합격하지 않을까 싶은데, 일곱 번을 시도해도 떨어졌습니다. 이미 자신감은 없어졌고, 하기 싫어졌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연소 워드 프로세서 3급 합격자가 저보다 나이가 많으니, 마지막으로 한번 더 도전해 보자고 합니다. 그래, 이제는 제대로 해보자. 조금 정신을 차리고 다시 시도합니다!!!


칠전팔기(七顚八起)라고 했던가요? 아쉽지만, 저에겐 칠전팔전(七顚八顚)이 되었습니다.... 모든 시험에 다 떨어졌습니다. 부끄럽지만, 당시 이 정도로 시험에 떨어진 아이는 제가 유일했습니다. 다른 의미로 유명해졌죠. 최저점의 상징 같은. 상징이라고 칭하진 않았지만, 스스로가 상징이라 생각했습니다. 자신감이 바닥난 거죠. 그렇게 저는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더 하기 싫었거든요. 그리고 당시엔 꿈을 포기했습니다. 난 안된다고.






한몇 년 정도는 그냥 놀았던 듯합니다. 그러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아주 큰 선물을 하나 사주셨습니다. 당시 233만 원인가 했던 거 같은데, 고가의 컴퓨터와 책상을 사주셨습니다. 우리 집 보물 1호!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 큰 금액의 컴퓨터였는데, 저를 위해 사주셨었습니다. DOS로만 컴퓨터를 배웠던 저는 처음으로 Windows라는 OS를 접하게 되었고, 집에서 공부하며 이리저리 가지고 놀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컴퓨터 학원 이야기를 살 꺼내십니다. 아깝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이제는 딸 수 있지 않을까. 음.... 뭐, 그럴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어머니와 상의한 끝에 다시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8번 떨어진 그 학원을요.


제목이 이미 스포일러니, 짧게 요약하면 결국 자격증을 땄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자격증을 딸 수 있었죠.




그렇게 자신감이 떨어졌던 후배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물론 축약버전인 '워드 3급 필기 8번 떨어지고, 쉰 뒤에 붙었음' 이긴 하지만. 후배가 어떻게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못하는 거 같다고 기죽지 말라는 말 대신 들려줬었죠. 그 뒤로는 밝아진 거 같으니, 적어도 기운은 전달되었으리라 생각되네요.






- 이때 이후로 생긴 작은 습관이 있습니다. 하다가 어려우면, 잠시 쉬었다 다시 처음부터 하기.

- 기억력이 나쁜 건 사실이었습니다... 아이 생일을 못 외워서 3살까지 버벅 거렸습니다... 지금도 태어난 시간은 못 외웠는데, 아내가 포기했습니다.

- 대신 다른 기억력이 좀 좋은 듯합니다. 스쳐 가듯 본 것이나 느낌등은 잘 안 잊습니다. 이야기를 기억하는 기억력은 아내보다 좋더라고요. 오래전 같이 본 영화인데 아내는 스토리를 전혀 기억 못 하는데, 전 줄줄 외우고 있더라고요.






이른 아침, 아내는 약속으로 외출을 하고 저는 혼자 도서관으로 가 아이를 위한 책을 빌렸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들은.... 모두 대출 중이네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책들을 담습니다.

아이가 좋아했으면 좋겠단 작은 소망을 품고 집으로.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빌려온 책 중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 있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합니다.

따란, 아쉽지만 없네요.



"너무해!!!"



... 뭐만 하면 맨날 너무하답니다.

어쩔 수 없었다, 대신 이런 재밌는 책들을 빌려왔다!! 며 살짝 책 소개를 합니다.



"어? 이 책 봤던 건데??"



......?



"이 책도 봤던 거네?"



.... 어??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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