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였던 주재원 아내, 미국에서 달러를 벌기 시작

미국 생활 3년 차, 나의 다음 스텝

by 쏭맘

소비만 하는 사람이라는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업주부로 지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는 소비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 이후 치솟은 물가 때문에
원래도 비쌌던 생활비가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장바구니에 물건 하나하나를 담는 일조차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ESL 이후, 나만 제자리에 있는 것 같던 시간


ESL 클래스는
무료해질 수 있었던 내 일상에 리듬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귄 친구들은
하나 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전공 수업을 듣기 시작하고,
취업을 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나는 그 자리에 고여 있는 기분이 들었지만
솔직히 더 공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나도 돈을 벌고 싶었다.


가장 현실적인 선택부터 시작한 구직

그래서
쉽게 취직이 될 것 같은 곳부터
차례대로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는 자격증을
하나씩 따다 보니

결국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일하기 전, 가장 큰 걱정은 아이였다


일을 시작하기 전
가장 걱정됐던 건
아이의 방과 후 일정이었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늦게까지 애프터스쿨(사설 돌봄)에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학교에서 받던 스트레스를

—같은 반에서 교묘하게, 지속적으로 괴롭히던 한 아이로 인한—

마음 맞는 애프터스쿨 친구들과의 즐거운 에너지로
중화시키며
아이 스스로 중심을 잡아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같은 학교 아이들이라 발도 넓어졌다)


완벽하진 않아도, 굴러가는 일상

집안일은
전업주부였을 때처럼 빡빡하게 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와 남편의 참여로
적당히 굴러가기는 했다.


가장 큰 단점이라면
여행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길어야 2년 정도 미국에 머물 계획이었고,
가고 싶었던 곳은
이미 대부분 다녀온 상태였다.


추가로 주어진 1년은
방학 때만 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되었다.




최고의 조건으로 바뀐 근무 환경

나중에는
원장님, 부원장님, 오너의 배려로

근무 시간을 오픈조로 바꿔 주셔서
아이의 오후 활동도 가능 해졌다.


그 덕에 아이는 수영팀에서
대회에도 나가게 되었고,
나에게는
정말 최고 조건의 직장이었다.




달러를 벌며 달라진 마음


달러를 벌기 시작하면서
환율이 오르는 게
더 이상 그렇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월급이 오르는 기분이라 약간의 즐거움까지 느껴졌다)


직장 내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동료들을 보며
오히려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게 되었고,


아주 단편적이지만
미국의 직장 문화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매일이 새로운 경험이어서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미국에서의 경력이 한국까지 이어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지금,
미국 데이케어 경력을 바탕으로
영어 유치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한국에서는
이 나이에 경력 없이 직장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생각했는데,


이 경험이
나의 다음 스텝을 도와주었다는 사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미국 생활의 완성


ESL 수업이
나의 보람찬 미국 생활의 가장 큰 시작점이었다면,


미국에서의 직장생활은
보람찬 미국 생활을 완성시켜 준 화룡점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커리어를 쌓고,
아이는 영어가 늘어가고,
그 과정에서
아내들만 우울해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쯤은 도전해 보자!
미국 생활은
분명 더 풍족해질 수 있을 것이다.



구직 과정이 궁금하다면
「미국 주재원의 리얼 구직 스토리」 브런치 북에
더 자세히 정리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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