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반창고, 내 속은 불바다인데 구라쟁이 아빠만 천하태평이다.
아들이 떠난 지 스무날이 다 되어 가는데,
통화 한 번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전화를 하면 늘 같은 대답만 돌아온다.
“엄마, 너무 바빠.”
별일 없겠거니 하면서도,
어쩐지 마음 한쪽이 싸했다.
그래서 결국 줌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화면에 뜬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웬걸!
안경 밑에 커다란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야? 얼굴이 왜 그래?”
“스케이트 타다가 넘어졌어.
얼굴 좀 다친 거야.”
운동신경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아들이.... 아이스 스케이트라니?
그건 최소 6개월 레슨을 따로 받아야 하는 운동이다.
문득 아이들 어릴 적 스케이트장에 갔던 날이 떠올랐다.
코치는 첫날 딸을 보더니 대뜸 이랬다.
“피겨 선수 시키셔도 되겠네요!”라며 감탄했다.
그 순간 나는 잠시 **엄마 김연아**가 되는 줄 알았다.
반면 아들은 코치에게서 눈길 한번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첫 발을 떼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았고,
그날 이후 아무리 꼬셔도 스케이트화를 다시는 신지 않았다.
그런 아들이 스케이트라니,
이게 웬일인가.
반창고를 떼고 사진을 다시 보내라 했더니,
안경 자리만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흉터 남을 수 있으니까 당장 병원 가!”
그랬더니 아들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나 학교 보험 안 들었어.”
오 마이 갓!
그제야 알았다.
학교 보험은 별도로 가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곧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남편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근데.... 연간 보험료가 오백만 원이 넘는데... "
연간 보험료가 무려 오. 백. 만. 원이라니!
그래도 나는 안전제일주의자다.
"당장 들어! 바로 지금 들어! 빨리!"하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구라쟁이 남편은 또 말이 많아졌다.
“안 들어도 될 거 같은데.... 우리 보험 있으니까 그걸로 하면 괜찮지 않아..?”
"그냥 들으라고! 세상에 무슨 일 있을 줄 알고! "
나는 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들에게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 진료를 받으라고
전화기를 붙잡았다.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 얼굴이라니!
그런데 저쪽에서는 난리가 아니었다.
“아니, 어떻게 하면 봉 잡고도 넘어질 수가 있냐?
그러기도 쉽지 않은데... 그게 더 힘들지 않냐?"
남편은 깔깔대며 웃어대고, 딸은 옆에서 한 술 더 뜬다.
“걔 운동신경 없다니까. 내가 진작 알아봤어.
근데 왜 갑자기 스케이트야? 하하하...
머리가 무거워서 그냥 떨어진 거 아냐?”
열 마디 딸은
아들 다쳤다는 소식 듣고
오늘만큼은 백 마디를 쏟아냈다.
키득키득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집에 불나면
불구경하러 달려온다더니,
열 마디 딸은 불났다 하니 뛰어오고
구라쟁이 남편은 신이 나서
둘이 하하 호호한다.
세상에...
나는....
속이 까맣게 타서 연기만 난다.
그때 남편이 갑자기 웃음을 멈추더니
딸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야 엄마 화났어. 진짜 화났어.
여기서 한마디 더 하면.... 아빠 비행기 타고 가야 돼.
그냥 끊어! 나중에 통화해!"
순식간에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끊자마자,
남편은 옆에서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금방 나을 거야~ 흉터 안 생긴다니까~
그 정도는 다 나아~"
온갖 소리를 다 해댄다.
나는 아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보험부터 들어!" 하고 또 불을 질렀다.
대학을 가더니
정말 안 하던 짓만 골라서 한다.
가기 전에 건강만 잘 챙기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아이고, 내 속에서 열불이 치밀어 오른다.
그래서 결국 다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도대체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냐?”
그랬더니
아들 대답이 더 기가 막힌다.
“아… 겨울에 친구들이랑 스케이트 탈 거라서
미리 연습했어.”
… 잠깐.
나는 숨을 들이켰다.
아니, 미리 연습을 하는 건 좋은데,
왜 얼굴로 연습을 하냐고?!
발로 하라고! 발로!
아들은 또 태연하게 덧붙였다.
“엄마… 근데 생각보다 얼음이 미끄럽더라."
처음엔 친구들이 놀라서
얼음팩 가져다주고 반창고도 붙여주더니,
나중에는 키득키득읏으며 놀렸단다.
역시 친구들도 우리 집 식구들하고 똑같다.
아들은 슬쩍 기가 죽어
“엄마… 나 진짜 창피했어…”
하며 나에게 속마음을 전했다.
지는 아프고,
친구들은 웃고…
이게 우리 아들 인생 국룰인가 보다.
아이고.
속이 쓰리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숨 한번 들이켰다가
다시 길게 한숨 한번 내쉬었다.
겨울 대비 훈련을 한다더니…
얼굴로 시즌 준비를 하고 앉아있고.
정말,
유구무언이다.
테니스를 친다며 라켓을 사더니,
하루 치고는 팔 아프다며 일주일 쉬고,
"다시 나가?" 하면
"아직 계획 없어."’라니.
그 어렵다는 라디오 클럽은 붙고,
학교 신문도 들어가서 기사 쓰고 난리인데…
정작 아무나 들어간다는 테니스 클럽에서 떨어졌단다.
불가사의한 일? 아니다.
운동신경 생각하면
“아, 그렇지…”
하고 바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다.
남편에게 하소연하니 또 웃으며 말한다.
‘원래 그래~ 신경 쓰지 마. 그러면서 크는 거야...."
심지어 수영 얘기까지 꺼내며 낄낄댄다.
‘개인 레슨을 1년 넘게 받아도 못 뜨던 애가,
결국 1년 지나고 2년 되니까 뜨더라~ 하하하"
내 속은 터지고 뒤집어지는데,
얼굴에 흉터 생길까 걱정되는 내 마음은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는다.
아들도 야속하고, 딸도 야속하다.
그중 제일 얄미운 건.....
이 와중에 낄낄 웃는 구라쟁이 남편이다.
어릴 땐 팔다리가 짧아서 균형이 안 맞았다 쳐도,
지금은 길쭉길쭉 잘 자라 놓고....
운동신경은 도대체 누굴 닮은 건지.
정말 우리 집 삼대 불가사의다.
내가 "도대체 누굴 닮아 운동신경이 이러냐"라고
한숨을 쉬자 남편이 당당하게 말했다.
"당연히 나 닮은 건 아닐 거야.
나는 예전에 운동 좀 했다니까."
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럼 하이힐 신고 100미터 달린 나는 뭐냐?"
그러자 남편은
또 웃으며 대답한다.
"에이~ 괜찮아.
운동 못해도 말만 잘하면 돼!
나 봐.
숨쉬기만 잘해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없어.~"
.... 정말 얄미운 구라쟁이다.
좋다.
밴댕이의 복수는 내일 도시락에서 시작된다.
내일 너 도시락은 없다.
맨밥에 김만 넣어주리라.
국물도 없다.
그런 줄 알아라.
오늘부터 도시락 출장 정지다!
이미지 제작 도움: ChatGPT (AI 이미지 생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