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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댕이, 구라쟁이 등에 타다.

마음은 어른인데, 감정은 다섯살짜리 밴댕이다.

by 감차즈맘 서이윤

요즘 나는 가끔씩 스스로도 웃기다.

밴댕이 속을 지닌 만큼 더 작아지면 안 된다고 수없이 다짐하면서도,

자꾸만 점점 더 작아진다.


이게 다 갱년기라서 그런가?

아니, 나는 **갱춘기**라 부르련다.

사춘기처럼 예민하고, 갱년기처럼 오락가락하는....

딱 내 마음 상태가 그렇다.


오늘 오후가 딱 그랬다.

늘 그렇듯 별것 아닌 일에 기분이 상했다.


다음 주 공연을 앞둔 딸아이가 드레스를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했고,

남편이 전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아주 뿌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열 마디가 엄마 아빠 먹으라고 뭘 잔뜩 보냈어.

밥 먹지 말고 기다려. 내가 총알같이 달려갈게.”


전화를 끊고 나서야, 딸의 문자가 이해됐다.

열 마디 딸답게 딱 세 글자.


"몇 시에 와."


나는 도착시간을 묻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도시락 포장 시간 계산 중이었다.


열 마디답다.

앞뒤 설명을 조금만 해주면 서로 기분이 좋으련만,

늘 그렇듯 딸은 말이 없다.


잠시 뒤, 남편이 쇼핑백을 들고 와서 씩 웃는다.

안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도시락 세 개,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 네 개,

바나나 머핀부터 블루베리 머핀까지 꽉 차 있었다.


순간,

아 오늘은 밥에서 해방이다!

기분이 확 좋아졌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 되면 전화 줘.”


그리고 오후 5시쯤

전화가 왔다.


열 마디 딸은 안부인사 같은 건 없다.

바로 본론이다..


“왜 전화하라고 했어?”


.... 아

여기서부터 기분이 상했다.


나는 사실

그냥 밥 맛있게 먹었다고,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당황하니 말이 자꾸 길어졌다.


“바빠?"

“어, 바빠. 다음 주 공연 있잖아.”

“어... 밥 맛있게 잘 먹었다고.....

그럼... 열심히 해..."


그리고는 이내

뚝-


열 마디 딸은 아무 미련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 '뚝-' 하는 끊기는 소리 사이로

왠지 내가 혼자 짝사랑하는 사람 같았다.


짧아서 더,

서운했다.


나는 속으로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나쁜 지집애.

'맛잇게 먹었어? 한마디 물어보는 데 5초도 안 걸릴 텐데 뭐 그리 바쁘다고...'


혼자 씩씩대고 있으려니,

남편이 뾰로통한 내 얼굴을 보고 물었다.

“뭔 일 있어?”


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는데,

입술이 내 마음을 먼저 배신했다.


"몰라... 그냥.. 딸이 좀..."


"왜? 뭔데?"


"얼마나 걸린다고 전화를 그렇게 받아?

예쁘게 말하면 천냥 빚도 갚는다는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서운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요즘 딸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 낳으면 자동차 탄다는데…

군데 왜 열 마디는 말을 그렇게 싹수없게 하냐고!”


남편이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왜 또 건드렸어?"


"아니야... 그냥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바쁘다면서 전화를 '뚝' 끊더라.

아 진짜 ,.. 진짜 말 좀 예쁘게 하면 안 되나?

왕 짜증 나-"


나도 모르게

다섯 살짜리 애처럼 이르고 있었다.


갱년기는

나이를 거꾸로 먹게 하나보다.


그 말을 듣던 남편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해지더니 말했다.


“걱정 마.

나만 바라봐.

나만 바라보라고....


내가 비행기 태워줄 테니까.

열 마디한테 바라지 마.


내가 뼈를 갈아서라도

당신 비행기는 내가 죽을 때까지 내가 책임질게."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확 그냥…

어디서 엄마한테 그렇게 하냐고

내가 직접 혼내줄 테니까.

당신은 신경도 쓰지 마.”


그 순간,

구라쟁이가 달라 보였다.


'원래 이 사람이 이렇게 멋있었나?'


나도 모르게

어린애처럼 확인하듯 물었다..


"진짜 나 평생 비행기 태워줄 거야?"


남편은 주저 없이 말했다.


"고럼, 고럼.

나는 배 타고 가더라도,

당신은 비행기 태워줄 테니까 걱정 마."


그 말 한 줄에

내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맞다.

그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 사람.

이게 우리 집 구라쟁이지.


갑자기

내 마음은 벌써

비행기 타고 구라파 하늘 위를 나는 중이다.


그래, 다 필요 없다.

나한텐 구라쟁이가 있으니까.


그리고 열 마디, 잘 들어라.


너 그렇게 말하면…


예전엔 악보 놓고 왔다고

내가 한참을 차 몰고 다시 가져다줬고,


공연 전에는 드레스 구겨질까 봐

내가 품에 꼭 안고 들고 다녔고,


공항 갈 때마다

시간 불문하고

내가 네 기사였다.


근데 말 한마디

그렇게 어렵니?


그 '맛있게 먹었어?'

그 '고마워'

그거 딱 다섯초면 엄마는 오늘,

더 바랄게 없는데.


그러니까 잘 들어.


그렇게 행동하면,

앞으로 심부름 절대 안 해준다!


사랑은 결국,

나를 다시 웃게 해주는 사람의 편에 서는 일이다.



이미지 제작 도움: ChatGPT (AI 이미지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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