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혹시 팔랑 귀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어?
나는 그 말이 무슨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쯤 되는 줄 알고 한참을 웃었어.
어떻게 사람 귀가 토끼 귀도 아닌데 팔랑팔랑 댈 수 있냐는 말이야. 그런데 그 말은 그렇게 재미있는 말이 아니었던 모양이야. 엄마도, 외할머니도, 그리고 이모까지도 그런 우스운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던 걸 보면 말이야.
우리 아빠는 우체국 집배원이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아빠는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아빠의 오토바이 타는 실력은 가히 환상적이었다. 우체국 마크가 달린 옷과 모자를 쓰고서 어떻게 그런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지 정말 입이 떡 하고 벌어질 정도였다. 가끔씩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와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마치 슈퍼맨이라도 본 듯 한껏 들떠서 내 어깨 뽕들은 하늘을 향해 끝도 없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함께 집으로 향하던 친구들에게 기분 좋은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엄마는 아빠에게 늘 밖에서만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밖에서는 힘든 일도 혼자서 도맡아 하는 평판 좋은 사람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아빠의 퇴근 시간은 어느 누구의 퇴근 시간보다도 늦었는데 그것은 펑크 난 사람의 일을 자진해서 대신해 주거나, 그게 아니라면 스스로 다른 사람 일을 자기 일에 얹어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는 또 어찌나 귀를 쫑긋 대며 잘 들어주는지...
잠깐.
내가 앞에서 언급한 팔랑귀라는 말은 아마 이것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빠 주변의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심지어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의 아주 사적인 일조차도 도무지 아빠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매일매일 바쁜 아빠와 그런 아빠를 매우 싫어하는 엄마 사이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엄마가 소위 우리 집 보물 1호라 말하는 우리 형은 나보다 자그마치 열다섯 살이나 나이를 더 먹었다.
이렇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사람들은 간혹 나를 어쩌다 생긴 아이라고 생각했고 어떤 무례한 사람은 그것을 기어이 입 밖으로 꺼내어 나를 곤란스럽게 만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유는 형이 누나가 아닌 형이라는데 있었고 엄마 나이 마흔을 훌쩍 넘어 오십이 다 되어갈 무렵 비로소 내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내가 한 번은 엄마에게 "나는 진짜 어쩌다 생긴 아이야?"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을 누구라도 봤어야 했는데. 마치 진실을 들켜 버린 양치기 소년처럼 엄마의 동공은 이리저리 갈 곳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어떤 나쁜 놈들이 그런 말을 지껄이더냐며 당장이라도 쫓아갈 듯 과한 액션을 취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차분해진 어투로 나는 누구보다 엄마와 아빠가 사랑해서 만든 희대의 걸작품이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말이 말짱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냥 어쩌다 생긴 아이라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형은 키가 아주 컸다. 아빠가 좋아하는 아주 큰 식물을 닮아서 끝도 없이 하늘로 자라는 키를 가졌다. 그리고 화분 속 식물의 줄기처럼 야리야리한 몸을 가졌고 쌍꺼풀이 없는 두 눈은 동그랗고 엄마의 화장품을 훔쳐 바른 것처럼 유독 얼굴이 새하얀 사람이었다.
비록 지금은 얼굴이 보기 좋게 그슬었긴 했지만 그것은 군대에 다녀오고 국토 대장정까지 지구 반바퀴를 걷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비록 공부를 그리 잘하진 못했지만 아빠의 기대가 닿는 자리에는 항상 형이 있었다. 아빠는 어린 나를 유난히 예뻐했지만 정작 그의 곁에는 나보다 형이 더 잘 어울렸다. 형이 아빠 곁으로 갈 때마다 아빠의 으쓱거리는 어깨는 더욱 자신 있게 흔들렸다. 그런 형은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부터 독립해서 서울 생활을 했었고 가끔 집으로 올 때면 누구보다 나를 아껴서 내 뒤만 졸졸졸 따라다니던 그런 형이었다.
꼬맹이, 막둥이, 똥구멍. 이런 단어들은 형이 나를 부를 때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내가 이제 그런 유치한 장난은 그만하라고 화를 내면 형은 내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살짝 때리는 시늉을 하며 앵무새처럼 내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곤 했다.
"그 런 유 치 한 장 난 은 그 만 하 라 고."
나는 이제껏 형에게 한번 맞아보기는커녕 형이 화를 내는 모습조차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형은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바보처럼 웃었고 그런 내가 귀찮게 굴면 품 안에 나를 가둬두고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형이 달라진 것은 이주 전쯤부터의 일이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