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우리

아무것도 아닌 우리 -12

by K기노

갑작스러운 우리의 결혼 발표는 엄마조차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이내 아이처럼 좋아하는 엄마를 보면서 내가 내린 결정이 맞는 걸까. 엄마를 기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차차 만나가면서, 아니 살아가면서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하면 되는 거지. 어차피 몰랐던 사이도 아니고.."

엄마의 말속에서 나는 겁도 없이 덜컥 사고를 쳐버린 내가 무서웠다. 뒤는 돌아보지 않고 당장 눈앞에 놓인 촛불 하나만을 의지한 채 덜덜 떨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가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혼자서 감당할 힘도, 헤쳐나갈 능력도 없으면서 나는 그렇게 미로 속에 갇혀버렸다.


복잡할 것 같던 결혼준비는 순조로웠다. 결혼에 관한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졌다.

결혼식도, 집도, 혼수도 어려울 게 없었다.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게 흘러가는 결혼준비 속에서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그 흔한 시댁이라는 말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가 조용히 준비하는 동안 내 휴대폰은 내내 잠들어있었다. 가끔 잘 되어가냐고 안부 전화하는 엄마의 연락 밖에는 간섭도, 훈수도, 통제도 없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과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문자를 하거나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행위는 진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부부에게나 해당될 일이었다.

우리에게는 결국 해당되지 않는 일들이었다.


"진짜? 써언, 진짜야?"

내가 결혼소식을 알렸을 때 수찬은 한동안 벌어진 입을 쩍 벌리고는 다물지를 못했다.

"입에 벌레 들어가겠다. 다물어. 진짜야."

"기집애, 진짜 앙큼하다니까. 순진한 뭐가 뭐, 뭐,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수찬은 말까지 더듬어가며 얼굴 가까이에서 내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눈치 빠른 수찬이 내 눈동자 안에서 진실을 읽어버릴까 두려워 고개를 돌렸다.

"얼굴 너무 가까운 것 아니야? 부담스럽게."

"그럼 소개시켜. 내가 직접 봐야겠어. 우리 써언을 맡겨도 될지 내가 딱 보면 안다니까."

"맡기긴 뭘 맡겨. 내가 물건이냐. 맡기게."

그 사람을 소개해달라는 수찬은 정말 끈질겼다.

"결혼식도 가족끼리만 간소하게 한다며? 진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렇게 급하게 할 거야? 나 진짜 섭섭해."

금방 눈물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슬픈 눈을 한 수찬을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그 사람 많이 바빠."

"결혼할 사람이 그 정도 시간도 못 낸다는 게 말이 돼?"

수찬에게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그리고 어쩜 그 말은 틀린 게 아닐지도 몰랐다. 결혼할 사람에게 시간이 없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을 말이었다.

혹시 오늘 잠깐 시간 돼요? 친구가 창윤 씨를 꼭 소개해달라고 해서요. 미안해요.

나는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 짧은 문장을 보내면서도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한다는 게 어쩐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괜찮아요. 제가 서은 씨 퇴근시간 맞춰서 그곳으로 갈게요.

곧바로 온 그 사람의 답장을 보면서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그 속에는 나를 묘하게 배려하는 듯한 조심스러움이 묻어있었다.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오케이 사인만을 기다리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수찬을 향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퇴근하고 회사 앞에 호프집에서 보자. 우리 진우 씨도 오라고 해도 되지?"

수찬은 특유의 발랄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는 향긋하고 달콤한 향기가 남겨졌다.

나는 수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무도 모르게 깊은숨을 내쉬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을 그에게 소개해준다는 것과 아무것도 아닌 우리의 관계를 수찬에게 어떻게 보여주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문득 생각해 보니, 우리의 관계를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계약관계? 친구관계?

그 어떤 이름도 우리에게는 딱히 어울리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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