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보다 서툰 우정

서툰 사랑이 남긴 흔적

by 덜자란사십대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 몇 년도 여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스무 살 중반쯤이었을 거예요. 제 인생에 드디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생겼죠. 살면서 여자를 많이 만나본 경험이 없던 터라, 그 친구가 너무나 소중하고 좋았지만 솔직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서툴고 어설펐습니다. 연애에 눈이 멀어 다른 소중한 것을 돌아볼 줄 몰랐던, 참 덜 자란 저였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시골에 내려가 있을 때였어요. 그곳은 정말 시골 중의 시골이라 휴대폰이 잘 안 터지는 곳이었죠.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려면 집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나가야 했어요. 뜨거운 여름 햇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매일 그 길을 걸어 나가 여자친구와 전화하고, 문자도 주고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온통 그 친구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제가 가장 친한 친구라고 여겼던 친구에게는 신경을 거의 못 쓰고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저에게는 가장 소중했고, 심지어 아버지 임종 때도 곁을 지켜준 친구였죠. 사실 그 친구 생일인 건 알고 있었습니다. 연락이 오기는 했지만, 저는 휴대폰도 안 터지는 오지에 와 있다는 핑계로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러 가기도 귀찮았던 그 길을 굳이 친구에게 전화하러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골에서 돌아와 친구를 만났을 때, 녀석은 제게 크게 서운함을 표현했습니다. "야, 너 나 생일인 건 알았냐? 연락 한 번이 없냐?" 저는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동시에, 그 친구가 제게 물었어요. "그럼 여자친구한테도 연락 안 했냐?" 저는 차마 거짓말은 못 하고 "그건 아니다"라고 대답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귀찮더라도 연락 한 번만 할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차 했습니다.

제가 평소에 "나는 여자친구 생기면 친구보다 여자친구다!" 같은 말을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혹은 제 신조처럼 떠벌리고 다녔던 건 맞아요. 하지만 막상 그 말이 현실이 되고, 가장 친했던 친구가 그 정도로 실망하고 멀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날 이후로 그 친구와는 연락도 못할 정도로 멀어졌어요.

그리고 이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친구와도 결국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친구와의 일로 너무 충격을 받고 제 감정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제 속물 같고 이기적인 모습에 스스로 실망해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한창 연애에 빠져서 철없이 굴었던 제 자신이 너무 속물 같고 이기적이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립니다. 소중한 것을 얻는다고 해서 다른 소중한 것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걸, 그렇게 서툰 방식으로 배우게 된 여름이었어요. 그리고 그 서투름이 결국은 두 가지 소중한 인연을 동시에 잃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저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 아픈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라는 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음을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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