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이 되기 위한 부끄러운 관문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 무슨 계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아마 제가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교 6학년 겨울, 혹은 봄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이지 마음이 짠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왔거든요. 이미 다들 자기들끼리 친해서 낄 틈이 없었죠. 주위에 아는 아이도 없고, 진짜 친구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던 몇 안 되는 친구들도 신도시 개발한다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다 다른 중학교로 간다고 했습니다. 중학교에 가면 진짜 혼자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는 중학교 입학할 때 안내문 같은 걸 줬어요. 거기에 두발 규정부터 신발, 가방까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빽빽하게 적혀 있었죠. 저는 그걸 진짜 '법'처럼 여겼어요.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줄 알았거든요. 부모님이랑 같이 시장 가서 안내문에 맞춰서 가방도 사고, 신발도 샀어요. 머리도 얌전하게 싹둑 잘랐죠. '이제 나도 중학생이다!' 뭐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들이 저보고 '짭퉁'이라고 놀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가짜 운동화', '가짜 가방' 막 그러면서요.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하다못해 프로스펙스 같은 국산 브랜드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안내문에 나온 대로 '학생다운 신발', '학생다운 가방'이라고 해서 산 건데, 그게 애들 눈에는 영 아니었던 거죠.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브랜드 신발이 아니면 '못사는 집 아이'로 낙인찍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진짜 부모님을 얼마나 원망했는지 몰라요. '왜 나만 이런 것을 사 줬을까? 다른 아이들은 다 나이키를 신고 아디다스를 입는데, 왜 나만 이런 걸 신어야 할까?' 이런 철없는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했습니다. 애들 사이에서 소외되는 게 너무 무섭고 싫었어요. 친구도 없는데, 짭퉁이라고 놀림까지 받으니 숨고 싶더라고요. 어머니는 제게 "그 신발이 뭐가 어때서 그러니? 그냥 신어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 말이 더 서운하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철없던 시절이었죠. 그때는 그깟 운동화, 그깟 가방이 제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요. 브랜드가 뭐라고, 친구들의 놀림 한마디에 제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졌을까요. 그때는 그 작은 신발 하나가 저를 '다른 아이들'과 구분 짓는 너무나 큰 장벽처럼 느껴졌습니다. 돈을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던 저는, 나만 브랜드가 아닌 것에 실망했을 뿐이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겨울, 그리고 중학교의 초반은 저에게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넘어서야 할 첫 번째 부끄러운 관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중한 관계보다 눈에 보이는 브랜드에 더 집착했던, 한없이 '덜 자란' 저의 모습이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