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여름, 그리고 빨간 건물

잃어버릴 뻔했던 존재의 소중함

by 덜자란사십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아요. 아마 아주 어렸을 적이었을 겁니다. 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 한없이 어렸던 것 같아요. 가족들이랑 같이 부산으로 놀러 갔죠. 거기서 그 유명한 해운대에 도착해서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바닷물에 정신없이 쓸리다 보니 가족들과 떨어지게 된 겁니다.


한여름 해운대는 정말이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거든요. 발 디딜 틈 없는 모래사장, 온갖 목소리가 뒤섞여서 거대한 소음처럼 들리고... 어린 저는 완전히 혼자 남겨진 섬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근데 다행히 한 가지 기억이 딱 떠올랐어요. 우리가 돗자리를 펴고 앉았던 곳이 바닷가 앞에 있는 빨간색의 커다란 건물 바로 앞이었다는 거. '그래, 그 건물만 찾으면 돼!' 싶어서 어린 마음으로 그 건물을 등대 삼아 걷기 시작했죠.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지만, 오직 그 건물만을 보면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한 10분쯤 걸었을까요. 아직도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못 찾겠는 거예요.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의 물결은 멈출 줄 모르고... 그때 문득,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너무 무서웠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만 같아서, 다시는 부모님을 못 만날 것만 같았죠. 그래도 울면 안 될 것 같아서 울음을 꾹 참으면서 그 빨간 건물 쪽으로 계속 걸어갔어요. 희망은 희미했지만, 멈출 수는 없었거든요.


그러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OO야! OO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죠.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세상에! 같이 놀러 왔던 삼촌이 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고 계신 거예요. 그 순간, 온몸에 힘이 쭉 풀리는 것 같았어요. 울지는 않았지만, 가슴속에 차오르는 안도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죠. 삼촌을 만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면서, 어린아이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돌아보면 정말 대단한 일은 아니었죠. 길을 잃었다가 가족을 다시 만난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어린 시절 해운대에서 길을 잃었던 그 여름날의 기억은, 저한테 가족의 따뜻함과 그 존재가 주는 안도감을 정말 깊이 새겨줬어요. 그리고 그때 그 빨간 건물은, 두려움 속에서 저를 이끌어준 유일한 등대이자, 소중한 것을 되찾게 해준 희망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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