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괜찮지않은사람

길고도 짧았던 시간이었다. 고통은 한없이 느리게 흘렀고, 기쁨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빠져나갔다. 버티는 순간마다 나는 내 안에 숨어 있는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은 늘 더를 요구했다. 더 열심히, 더 잘, 더 빠르게. 그 속도에 맞추려다 나는 숨이 가빠졌고, 결국 멈추어 섰다. 그 멈춤이 실패처럼 느껴졌지만, 돌이켜보니 그 순간이야말로 나를 지켜낸 선택이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수없이 대화했다. 한 번도 꺼내놓지 못했던 이야기, 오래 묻어둔 감정, 그리고 남들이 알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상처들. 그것들을 글 위에 올려놓는 건, 생각보다 훨씬 무겁고 벅찼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로웠다. 아픔을 쥔 손을 조금씩 풀어내니, 그 속에 남아 있던 건 여전히 살아 있고 싶은 나였다.

살아간다는 건 결국 완벽해지는 일이 아니라, 망가지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내 안의 부서진 조각들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불규칙한 형태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흠 없는 보석을 귀하게 여기지만, 나는 이제 긁히고 깨진 돌멩이의 가치를 안다. 그 상처가 지나온 시간을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나는 완벽하게 괜찮은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상처받고, 때로는 주저앉아 울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에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나를 다그치지 않고, 나를 지키는 편에 서겠다. 세상이 뭐라 하든, 나를 잃지 않는 삶을 살겠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멈춰 서 있다면, 그 자리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시간이다.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고, 스스로를 안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모두,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그 모든 아픔과 멈춤 속에서도, 나는 끝내 나로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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