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입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깊이 박혀 오래도록 뽑히지 않을 때도 있고, 스스로 한 선택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가슴을 후벼 팔 때도 있다. 그 상처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고들 하지만, 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를 바꾸고, 다른 이름으로 남아 우리 안에 자리 잡는다. 문제는 많은 사람이 그 상처를 애써 지우려 하다가, 오히려 더 깊이 새겨 넣는다는 것이다.
나는 한때 상처 없는 사람이 되어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안간힘을 쓰며 아픈 기억을 무시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고,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처럼 보이려 했다. 하지만 속은 달랐다. 억눌린 감정은 틈만 나면 부풀어 올랐고, 사소한 말에도 쉽게 무너졌다. 그때 깨달았다. 상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상처를 품는다는 건, 그 아픔이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수용이다. “그래, 나는 아팠어. 그리고 여전히 아플 수도 있어.” 이렇게 솔직해지는 순간, 상처는 나를 지배하는 힘을 잃는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더 이상 나를 끌고 다니지 못한다. 마치 손 안에 작은 돌멩이를 쥔 것처럼, 무게는 있지만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상처를 품고 산다는 건 방어구를 두르는 일과 비슷하다. 한 번 다친 자리는 다시 다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부위를 보호하려 애쓴다. 다만 그 방어가 지나치면 새로운 경험마저 막아버린다. 나는 과거를 핑계 삼아 관계를 피했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실망도, 배신도 덜 겪겠지만 그만큼 기쁨과 따뜻함도 놓쳤다. 결국 나는 나를 너무 단단하게 감싸서, 스스로 숨막히게 만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방어를 풀었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나서지는 않지만, 나를 향해 오는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으려 했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말이 닿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틈을 내주었다. 놀랍게도 그 틈 사이로 들어온 빛은 상처를 서서히 덮어주었다. 여전히 상처는 있지만, 덜 쓰라렸다.
나는 이제 상처를 자랑처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버틴 증거이고,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온 과정이었다. 물론 여전히 그 상처를 건드리는 일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마저 나의 역사다. 나는 그 역사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단단해지지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귀 기울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혹시 지금도 상처를 지우려 애쓰고 있다면, 잠시 멈춰도 좋다. 지우는 대신 함께 사는 법을 배워보자. 그 상처를 안은 채 웃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나와 화해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살아간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