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픔마저
내 일부로 받아들이기

by 괜찮지않은사람

아픔을 밀어내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상처를 숨기면, 마치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워질 거라 믿었다. 사람들 앞에서 더 많이 웃고, 더 크게 떠들고, 일부러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 나를 삼키려던 고통이 나를 잊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아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마음 깊숙이 뿌리내리며, 틈만 나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동안 아픔을 ‘없애야 할 것’으로만 여겼다. 나를 망가뜨리는 불청객, 삶을 무너뜨리는 장애물.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그 감정들은 내가 걸어온 길의 일부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문장이었다는 것을. 기쁨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내 인생의 서사를, 아픔이 결과 온기를 더했다는 사실을.

물론 받아들이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아픔을 직면하는 건, 어둡고 추운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숨이 막히고, 세상이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씩 그 방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다. 억지로 쫓아내려 하지 않고, 그저 그 감정과 함께 있는 연습을 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픔은 나를 집어삼키는 대신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패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잊는 건 해결이 아니다. 차라리 기억 속에 그대로 두고, 그 무게와 함께 살아가는 게 진짜 회복이라는 걸. 상처는 사라져야만 가치가 있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상처가 있었기에, 나는 더 깊이 사랑하고, 더 넓게 이해하며, 더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아픔을 내 일부로 받아들인 지금,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숨기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물으면, 기쁜 순간뿐 아니라 힘들었던 순간도 함께 꺼낸다. 그것이 나를 만든 모든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 안의 아픔은 결핍이 아니라 무늬다. 나를 구별짓는 고유한 패턴이자, 삶을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그림자다.

이제 나는 아픔과 함께 걸어간다. 그 길이 평탄하지 않아도 괜찮다. 왜냐하면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 모든 감정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걸. 그리고 언젠가 이 길 끝에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나였다. 그리고 그게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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