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켜준 모든 느린 날들

by 괜찮지않은사람

누군가는 나를 게으르다고 했고, 누군가는 나태하다고 했다. 빠르게 나아가야 한다는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확실히 뒤처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느림 속에서 숨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냈다. 세상은 늘 더 빠른 속도를 요구했지만, 내 삶을 지켜준 건 오히려 그 요구와 반대 방향에 서 있던 느린 날들이었다.

느린 날들은 시작부터 달랐다. 알람을 듣고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아침, 일정이 하나도 없는 오후, 계획 없이 걷는 저녁. 그 속도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깨닫게 했다. 내가 놓친 감정들, 무시했던 생각들, 흘려보냈던 순간들이 하나둘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들은 빠르게 달릴 때는 절대 보이지 않던 것들이었다.

그 느림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무너짐에서 끌어올렸다. 불안에 짓눌리던 마음이 숨을 돌릴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비교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남들만큼’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나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배웠다. 쉬어도 괜찮고, 멈춰도 괜찮다는 단순하지만 절실한 진리를 몸으로 익혔다.

물론 느린 날들은 외롭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들 바쁘게 달리는데, 나 혼자 뒤에 남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 고독 속에서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뭘까?’, ‘나는 왜 이렇게 지쳤을까?’. 그 대화는 서툴렀지만, 결국 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나에게 속도를 강요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모든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다는 걸. 그리고 꼭 따라잡아야 할 이유도 없다는 걸.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남들보다 앞서가는 발걸음이 아니라,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걸을 수 있는 나만의 리듬이었다. 그 리듬을 찾아준 게 바로 느린 날들이었다.

느린 날들 속에서 나는 사랑을 다시 느꼈다. 사소한 온기, 가벼운 웃음, 평범한 대화가 주는 위로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빠르게 지나가던 시절엔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느린 날들 안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그 머무름이 내 마음을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안다. 삶은 항상 전력질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때로는 멈추고, 돌아보고,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길이 있다는 것을. 느린 날들이 나를 지켜줬기에,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속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나를 재촉해도, 내 걸음은 내가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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