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살아낸 시간들
“어린 나이에, 어쩌다가...”
투석실에 누워 있을 때마다
의료진도, 환자도, 세상 전체가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덮쳐왔다.
아픔이 너무 커서
세상도, 하늘도, 신도
모두 나와 함께 울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또래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교실보다 운동장이 더 익숙했고,
짧은 머리로 교정을 누비며
동료들과 땀과 숨소리를 나누던 아이였다.
질투와 시기의 언어는 내게 멀리 있었고
대학에서도 무난한 관계 속에 섞여
호감 속에 안온하게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이 닥쳤다.
삶이 멈추고 고독이 깊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나는 처음으로 질투와 시기의 날카로운 얼굴을 보았다.
아픈 몸으로 결혼을 하자 누군가는 질투했고
아픈 몸으로 아이를 낳자 누군가는 시샘했고
아픈 몸으로 집을 마련하자 또 누군가는 부러워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기뻐해야 할 순간마다
왜 남의 시선이 원망과 비교로 바뀌는가.
억울했고, 서운했고, 마음이 무너졌다.
그러나 곱씹다 보니 알게 되었다.
불쌍히 여김을 기대한 내 마음이
세상이 몰라주지 않는 서운함으로 이어졌고,
그 서운함이 다시
나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 외로운 시간 끝에서 나는 배웠다.
세상이 나를 몰라줘도 괜찮다는 것.
하늘이 동정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 감정에 매달리면,
나는 앞으로 걸을 수 없다는 것.
운동장에서 배운 건 단순한 승부가 아니었다.
동료의 골은 모두의 환호였고,
성장은 늘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세상이 내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모두가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느라
손을 내밀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질투도, 시기도, 외면도 삶의 일부로.
운동장 한복판에서 누구보다 크게 손뼉 치던 아이처럼,
이제는 내 삶의 한가운데서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세상이 몰라줘도 괜찮다.
내 삶은 내 숨으로 증명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