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이 작은 봄, 고등학교 시절

행복했던 초록 - 7

by 마음부자

초등학교의 외로움을 지나 중학교의 움츠림을 견디고 마침내 나라는 씨앗이 움튼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고등학교, 그리고 내 인생의 작은 봄이었다.


그 시간은 누가 시켜서도 챙겨줘서도 아니었다.
내가 원했고, 내가 고집했고, 내가 지켜낸 시간이었다.





진학을 앞두고 작은아버지와 부모님은 상업고등학교를 권하셨다.
언니처럼 빨리 졸업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 집안 형편이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울며 말했다.

“저는 인문계인 oo여고에 가고 싶어요. 갈거에요.”

한 번도 고집을 부리지 않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른들은 놀랐고, 나 역시 놀랐다.


그 행동은 처음으로 나의 가능성을 내가 믿어보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내가 자란 지역에서 인문계 고등학교하면 단연 00여고였다.
들어가기도 어렵고 들어가서도 치열한 학교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학원도 과외도 없이 오로지 교과서 한 권을 붙잡고 공부했다.
자습서도 없던 시절 문장 하나하나를 달달 외우며 버텼다.

결국 전교 50등 안에 들었다.

한 학년 학생수가 500명이 넘었다.


아마도 나 자신이 가장 놀랐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도 할 수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

그렇게 반대만 했던 엄마도 첫 성적표를 보곤 웃으면서 '잘했다'라고 한 마디를 해 주셨다.

그 말 한마디가 그 어떤 칭찬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그 시절의 나는 가난했고 조용했고 수줍었지만 무엇보다 단단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다.

모든 과목에서 힘들지는 않았지만 영어가 나의 발목을 잡았다.

중 1때 그 사건 이후로 난 영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후회했다.

하지만 뒤늦게 친구들을 따라잡기란 쉽지가 않았다.


특히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다.
수학 그 자체보다 수학 선생님의 판서 덕이었다.
칠판 위 반듯한 흰 글씨,
숫자마저 예쁘게 흘러나오던 그 순간.
“나도 저렇게 쓰고 싶다.”
그 마음이 수학을 좋아하게 만든 첫 감정이었다.


글씨가 예뻐서 여자일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김oo 선생님은 잘생겼고 키가 컸으며 인기가 많았다.
매 시간마다 교탁에는 캔커피나 음료수가 올려지거나 가끔은 예쁜 꽃이 놓여지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 덕분인지 나와 두 친구는 모두 수학을 좋아하게 되었고
결국 수학 관련 학과로 세 명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어쩌면 우리는 수학이 아니라 수학 시간의 반짝임을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성격 탓인지 친구가 많지 않았다.
어떻게 시작된 인연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우리 셋은 수학 선생님 덕분에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늘 함께였다.

그 시절은 나에게 행복 그 자체였다.


하지만 두 친구와 나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넓은 집, 과외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 냉장고 가득한 간식을 누리던 그들.
나는 자주 그들의 집을 찾았지만 내 집에는 단 한 번도 초대하지 않았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나는 많이 웃었고, 자주 설렜으며, 친구들과 함께라 외롭지 않았다.

야자 시간에 쥐가 나와 비명을 지르던 일,
아침마다 매점 앞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우리 이거 모닝커피야~” 하고 웃던 시간,
점심시간 반찬을 바꿔 먹고 쉬는 시간엔 선생님 이야기를 쪽지로 주고받던 일.

누가 봐도 우리는 유유상종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처음 알았다.
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겉모습이 아니라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작은 탈선의 순간도 있었다.
밝고 예뻤던 한 친구.
그 친구의 집에서 유행가를 듣고 춤을 따라 하며 야자까지 땡땡이쳤던 날.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탈이었겠지만 나에겐 큰 모험이었다.
작은 파문이 내 마음을 일렁이게 했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내가 내 삶을 향해 처음으로 ‘예’라고 말했던 시간이었다.
그 전까지는 주어진 삶을 살았다면 이 시절만큼은 내가 선택했고, 내가 감당했고, 내가 웃을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돌아가고 싶은 시간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요.”


물론 그 안에는 가난도 있었고 열등감도 있었지만 누가 아닌 나 자신이 당당히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했던 내가 있었다.

그 시절은 내 인생의 초록불이었다.


주춤대던 나에게

“건너도 돼, 이제 괜찮아.”
하고 말해주던 따뜻하고 용감했던 계절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