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뭇거리는 노랑 - 8
고등학교 3학년.
모든 것이 결실을 맺는 시간이었다.
나는 성실히 달려왔고 그만큼의 결실이 내게 올 거라 믿었다.
그 시절 내 마음 한가운데에는 건축실내디자인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집을 멋지게 꾸미는 일.
내 방은 없었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긴다면 내 방 구조를 멋지게 바꾸고 싶었다.
더하여 공간에 어울리는 색을 고르고, 나를 위한 가구를 재배치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흘렀다.
물론 모든 것은 상상 속의 일이었다.
미술 선생님이 “넌 디자인 감각이 참 좋다”는 말을 해줄 때면
유난히 미술 시간이 기다려졌다.
나는 그 감각을 평생의 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은 그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술을 배우는 학원은 커녕, 재료 하나 제대로 준비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그것은 나에게 대학 입학은 커녕 아예 시험조차도 꿈꾸지 못할 무겁게 내려앉은 현실은 내 꿈보다 더 단단한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았다.
작은아버지, 부모님, 담임 선생님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길은, 너에겐 무리야.”
“꿈도 좋지만, 먹고사는 게 먼저야.”
그때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혹시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
형편이 이런데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건 불효일까?
그 무렵 추천받은 길이 있었다.
간호사관학교.
우선 등록금 걱정이 없는 곳이다.
심지어 숙식도 생활비도 제공되고 졸업 후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된다는 곳이다.
누가 보아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너무 잔인한 길이었다.
나는 피를 무서워했고, 비위도 약했고, 생물도 싫어했다.
온몸이 “그건 너의 길이 아니야”라고 외쳤다.
그럼에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안정적인 길과 내가 진짜 원하는 길 사이에서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대학입시는 12월이었지만 간호사관학교 접수는 9월이었다.
빨리 합격하고 마음 편하게 놀자는 주변 친구의 말이 날 힘들게 하는 이유가 조금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간호사관학교 원서를 써 내려가던 날 펜을 잡은 손이 그렇게 떨린 적은 없었다.
한 자 한 자 적을수록 꿈과 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마지막 순간 나는 간호사관학교를 가지 않기로 했다.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을 설득해 그나마 등록금이 저렴하고 취업이 가능한
그러나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전공을 택했다.
그때 나는 배웠다.
열심히 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반드시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실내디자인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그 아픔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 선택이었고, 내 현실이었으니까.
그렇게 묻어두고 살아왔던 꿈이
어느 날,
고등학생이 된 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 나 디자인 전공하고 싶어.”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마치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내 꿈이 다시 숨을 쉬는 순간이었다.
“그래, 해봐.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좋겠어.”
내가 평생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던 그 말을 나는 내 딸에게 해주었다.
지금 딸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색을 고르고, 도안을 구성하며 밤늦게까지 스케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찌르르해진다.
나는 이루지 못했지만 내 아이가 이루는 꿈을 보며 마치 보상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신호등은 노란불이었다.
조금 더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른 길을 걸었지만 끝까지 내 삶을 책임지고 있다.
이제는 그 노란불마저 내 인생의 한 장면이었다고 그때의 나도 충분히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지금 딸이 건너고 있는 초록불을 바라보며
내가 멈췄던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