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헤엄치며 살아가는 중
최근 구병모 작가의 작품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가미>, <파과>를 연달아 읽으며 모두 독특하다고 느꼈다. 타투, 아가미, 여자 살인청부업자라는 소재가 신선하다 못해 약간의 거부감 또한 들게 한 것도 사실이다. 소재뿐 아니라 판타지적인 설정을 통해 현실에서 소외되거나 불완전한 존재를 드러내 보이려고 한다. 더불어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 입고 삶의 고통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지켜내고 변화하는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2011년 작품 <아가미>는
삶의 끝에 내몰린 아버지와 함께 호수에 빠져 죽음의 문턱까지 간 한 소년 '곤'이 아가미를 얻으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인간의 모습과는 다른 존재로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간다. 아가미라는 기능은 결코 사람들 속에서 함께 살아가기 어려운 혐오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상처 입은 인물들과 만나서 존재 자체에 대한 의미를 알아가고 함께 살아가는 삶의 소중함도 깨닫게 된다.
판타지적 설정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비현실적인 요소를 통해 소외와 고립, 상처, 그리고 존재 자체의 방식을 새롭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013년 작품 <파과>는
65세 여성 살인청부업자 '조각'은 살인이라는 기능적이고 감정은 통제되며 살아간다. 40년 동안 해오던 살인을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과는 달리 몸은 쇠약해지고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왔던 삶에 균열이 생긴다. 자신에게 복수하려는 동료와 많은 나이차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의사, 유기견으로 키운 개 등의 여러 인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점 속이 썩어가고 물러지는 변화를 겪게 된다.
제목 ;파과'(뜻: 깨지고 썩은 과일)처럼.
'파과'는 원래 16세 전후의 여성이라는 의미도 있고, 깨진 과일이라는 뜻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조각'은 늙어가는 과정에서 내면이 깨어지고 감정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마치 이름의 조각처럼 깨어지듯이 균열이 생기게 된다. 또한, 소설 속에서는 복숭아라는 과일이 등장한다. 복숭아의 부드러운 표면, 익은 향기, 그리고 쉽게 상하는 속성은 조각이라는 인물의 내면 상태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아가미>가 좀 더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파과>는 <아가미>보다 현실적이고 스릴러적인 요소를 가진다고 보인다.
2020년 작품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는
타투를 하는 '시미'와 그녀에게 타투를 받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삶에서 고통과 상처를 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연을 담아 문신을 새기고 그것을 통해 삶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이 소설은 위의 두 소설과는 조금은 다르다. 좀 더 현실과 가깝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야기하며 삶을 따뜻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힘을 그려내는 것이 다르다.
구병모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마음으로 이 세 작품을 썼으리라 생각해 본다.
첫째, 아가미, 60대 여성의 살인청부업자, 타투인 현실적이지 못한 요소를 통해 현실을 더 가까이 다루고자 한다는 점이다. 읽는 이가 처음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인간다움,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며 조용히 다가간다.
둘째, 불완전하고 소외되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을 다룬다. <아가미>에서 남들과 다른 기능을 가진 '곤', <파과>에서의 나이 들어가는 노부인 '조각', 저마다 깊은 상처를 가진 '소외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고립되려고 하지만, 결국 각자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우리의 눈을 그들에게 돌려 개인의 삶을 성찰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삶의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상처가 끝이 아닌 삶의 원동력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진정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 준다.
나는 이 세 작품으로 인간은 아무리 망가지고 상처와 고통을 입어도 복숭아 하나의 감촉, 하나의 타투 그림, 물속에서의 자유로운 호흡을 통해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읽었다.
극한의 상황에 놓인 인물들을 보면서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고 생각해보려 한다. 또한, 인물들이 끝까지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삶을 향해 나아가는 강렬한 몸무림을 보았고 그것을 보며 멋지게 살아줬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가지게 된다.
우리는 모두 파과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썩기 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온몸으로 느끼고, 깊이 있게 생각하며,
내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스스로 자신을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