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시작을 가져오는 ‘나’
새벽 공기가 차다. 밤새 서재의 정막 속에 갇혀 있던 묵은 공기를 창밖으로 내보내고, 그 빈자리에 갓 맞이한 새벽바람을 들인다. 원두를 갈고 물을 끓이는, 어제와 다름없는 이 반복적인 의식을 치르다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마시는 이 공기는 과연 어제의 것일까?’
서재 안의 책상이나 가구들은 어제나 오늘이나 그 자리를 버티고 있지만, 내 폐부로 들어오는 이 새벽공기는 내 인생에 단 한 번 마주하는 유일한 존재이지 않은가. 우리는 매일 익숙한 문을 열고 서재로, 혹은 일터로 들어서지만 사실은 매번 어제를 뒤로하고 누구도 걷지 않은 ‘오늘’이라는 이름의 신대륙에 첫 발을 내딛는 셈이다. 시간이 기회라면, 공기는 생명이다. 나는 오늘도 ‘어제 살던 사람’이 아니라 ‘오늘 새로 태어난 존재’로서 생생한 축복을 부여받고 있다.
아주 오래전, 난생처음으로 혼자서 홍콩 여행을 떠나는 날 나는 정말 비장했다. “오늘 홍콩 공항에서 마주칠 수많은 사람은 내 평생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이들이다. 만약 누군가와 또 마주친다면 그건 기적이고, 그때의 나는 분명 오늘의 나와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낯선 땅에 발을 내디디며 떨림과 두려움 앞에 가졌던 그 '근거 있는 비장함'이, 지금 이 익숙한 서재 안에서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익숙함이라는 안대만 벗어던진다면, 서재에서 부엌으로 가는 통로조차 미지의 탐험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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