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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와 현실 사이,
서로를 성장시키는 '건강한 쓴소리'

지도자의 곁에도, 사랑하는 짝의 곁에도 필요한 우정의 온점

by Itz토퍼

얼마 전, 스포츠 기사 하나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있는 해리 케인에게 한 팬이 물었습니다. "아직도 손흥민과 연락하며 지내느냐"고. 케인은 망설임 없이 답했습니다. "손흥민과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그는 내가 평생 연락을 이어갈 사람(friend for life)이다"라고. 그 짧은 대답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친구를 얻는 일은 기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이 나를 외면할 때에도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남아 주는 단 한 사람, 그 사람의 존재가 바로 기적입니다."


그 기적 같은 순간은 제게도 찾아왔습니다.


딸 보배단지가 갑작스러운 급성폐렴으로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였습니다.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 저는 오래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대학병원에서 교수이자 외과 의사로 일하다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린 그 친구에게. 친구는 시차도 잊은 채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제 물음에 답해주었습니다. 수시로 상황을 묻고, 조언하고, 조용히 건넨 따뜻한 한마디 한마디가 절망 속에 있던 저를 조금씩 일으켜 세웠습니다.


사춘기를 지나며 제가 쌓아온 가장 큰 재산은 단연 '친구'였습니다.


돌아보면 제 곁에는 늘 두 부류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의리'로 맺어진 친구, 또 하나는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친구였습니다.


의리로 나서는 친구는 어떤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내 곁을 지켜주는 든든한 기둥 같습니다. 내가 힘들 때 무조건 내 편에 서 주고, 때로는 나의 실수와 허물조차 눈감아주며 감싸 안아줍니다. 그 존재만으로도 깊은 정서적 위안이 되며,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따뜻한 확신을 줍니다. 벼랑 끝에 선 우리를 붙잡아 주는 그 손길은, 위기의 순간 그 어떤 말보다 크게 빛납니다.


반면에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친구는 감정보다 사실을 앞세웁니다. 내가 그릇된 길로 가고 있을 때 가감 없이 경고하고, 뼈아픈 실수를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그 순간엔 마음이 상하고, 때로는 그 소리가 너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흐른 뒤, 내 인생을 더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준 것은 결국 그들의 솔직함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장의 통증을 기꺼이 함께 나눠준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지금 당신 곁에 남은 친구는 누구입니까?


살아가며 겪는 찰나의 위기 속에서는 나를 감싸주는 의리 있는 친구가 절실합니다. 그가 버팀목이 되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심리적 안정을 찾습니다. 하지만 긴 인생의 여정을 놓고 본다면, 현실을 깨닫게 해주는 친구야말로 더 깊은 자양분이 됩니다. 쓰디쓴 조언은 당장은 아파도,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약과 같습니다.


결국 가장 귀한 친구란, 이 두 가지 성향을 적절히 품은 사람입니다. 내 편이 되어주면서도 필요한 순간 거침없이 쓴소리를 건네는 사람. 그런 친구를 가졌다면,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가장 값진 보물을 찾은 셈입니다.


이러한 우정의 원리는 개인의 관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도 깊이 닿아 있습니다.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 곁에는 맹목적인 지지만 보내는 무리가 아닌,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권력의 달콤함에 취해 눈과 귀가 멀어갈 때,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이 길은 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쓴소리가 살아있어야 정치는 비로소 건강해집니다.


사회의 거울인 문화예술인과 작가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펜은 총보다 강하다'라고 배웠습니다. 예술가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정직한 필치로 세상을 바꾸는 강력한 힘을 지닌 존재입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잠든 양심을 향해 거칠지만 정직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 사회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깨우는 것, 그것이 예술가에게 부여된 고귀한 '사회적 의리'입니다.


그리고 가장 밀접한 관계인 부부와 연인 사이에서 쓴소리는 더욱 깊게 빛납니다. 이때의 쓴소리는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비난이 아닙니다. 상대가 더 빛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깊은 사랑의 발로여야 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담아 건네는 한마디는, 관계를 설렘의 단계를 넘어 단단한 신뢰의 성채로 만들어줍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짝이 해주는 조언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확실한 처방전입니다.

45096cca-9577-49ed-b440-f8af0065a2f9.png by ChatGPT

제 곁에는 40년 넘게 '쓴소리 대장' 노릇을 해주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한때 의리만을 외치던 이들은 시간이 흐르며 각자의 사정에 따라 하나둘 곁을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달랐습니다. 살아온 환경도, 방식도, 신앙도, 경제적 형편도 저마다 달랐지만, 우리는 여전히 틈틈이 안부를 묻습니다. 물론 그 안부 속에는 언제나 매서운 쓴소리가 섞여 있습니다. 때로는 그 소리에 마음이 상해 한동안 연락을 끊기도 하지만, 결국 그 깊은 의리 때문에 먼저 사과하고 화해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우리의 인연은 까마득한 대학 시절, 대학가의 하숙방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학교도, 전공도, 고향도 달랐던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 것은 소주 한 잔에 밤을 새우던 무구한 수다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우리 셋의 공통점은 의리만큼이나 거침없는 쓴소리였습니다. 그 덕분에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고민과 아픔을 가식 없이 꺼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졸업 후 각자의 삶을 살다 한동안 소식이 끊기기도 했지만, 인터넷의 도움으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를 다시 찾아냈습니다. 한 명만 한국에 있고 나머지는 타국에 있어 얼굴 한 번 보기도 쉽지 않지만, 은퇴 후 할아버지가 된 지금도 우리는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매섭고도 따뜻하게 참견합니다. 의리로 뭉치되 거침없이 진실을 나눌 수 있는 관계,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friend for life'라고 부릅니다.


누군가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를 온전히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소리를 달게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를 향한 마음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가장 아픈 소리를 가장 따뜻한 체온에 담아 전해주는 사람. 오늘 당신 곁에는, 서로의 성장을 위해 기꺼이 악역을 자처하는 진정한 친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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