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4, 인생 뭐 별거 있나?

Castrojeriz에서 Fromista까지

by Sal

까미노앱을 보면 까미노길은 구간별로 그 길이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별 몇 개로 표시해 놓았다. 하지만 별 하나짜리 구간이라고 방심하면 큰 오산이다. 내가 장담하건대 모든 구간마다 그 나름의 어려움이 반드시 있다. 오늘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산 하나를 넘고 나서 이제 좀 쉽겠지 하고 안심했는데, 그때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자갈길에 발목이 아직도 욱신욱신하다.



프로미스타(Fromista)로 가는 까미노길 옆에는 네덜란드의 운하처럼 카날 데 카스티요(Canal de Castillo)라는 운하가 있다. 흐르는 물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나뭇잎, 그리고 그 물소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길을 멈춰서 사진을 찍어보지만 그 생생한 느낌을 사각형 화면 안에 다 담을 수가 없다. 그래도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유혹에 계속 발걸음을 멈춘다. 아마도 카메라 고수님들은 한방에 멋있게 찍고 편하게 가던 길을 계속 가겠지! 부럽다. 까미노길이 비록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혼자 걷는 걸음이고 누구도 경쟁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나름의 또래/동료 압박(Peer Pressure [1]) 또는 자가압박(Self Pressure)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또는 경쟁에 익숙한 사회에서 살아온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단 걷기를 시작하면 중간에 멈추지 않으려고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을 한다. 걸으면서 물을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것은 당연하고, 때로는 비가 와도 걸으면서 배낭에서 우의를 꺼내어 입기도 하고, 날씨가 더워지면 겉옷 정도는 걸어가면서 벗는다.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바람막이 재킷을 입는 묘기도 보았다.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노력하는 나를, 이 운하가 계속 멈춰 세운다. 사진 한 장 찍고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또 ‘이것은 반드시 찍어야 해.’하면서 또 한 장, 그리고 ‘이제 제발 그만!’을 마음속으로 외치지만 ‘어 안돼. 이것도 찍어야 해.’하고 또 멈춘다. A는 이미 저 앞으로 가버리고 이제 더 이상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힘???들게 도착한 오늘의 알베르게에는 주방이 없는 이유로 (사실 주방은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 야속하게도 출입문이 닫혀 있다.) 마트에서 샌드위치와 와인으로 가볍게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 간단한 와인과 샌드위치 저녁은, 호주에서 온 대니엘이 마트에서 만날 때부터 자기도 ‘간단한 저녁’이라고 하면서 합석을 했고, 그 이후로 한 명, 또 두 명씩 늘더니 프랑스 시인 쟝, 아직 통성명도 못한 이태리 아저씨 한 명, 콜롬비아출신이지만 스페인에서 직장에 다니는 마리, 이스라엘에서 온 언니, 닭 벼슬 헤어스타일의 아일랜드 아저씨, 캐나다 퀘벡에서 온 미셸과 클라라 그리고 케씨, 마지막으로 made in Korea지만 from Malaysia인 우리가 섞인 시끌벅적 룰루랄라 국제적인 와인파티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복잡한 현상에 대해 일관된 규칙을 찾아내서 ‘무슨 무슨 법칙’ 같은 것을 만들기를 좋아한다. 까미노길에도 역시 몇 가지 법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음식 무한 증가의 법칙’이다. 한두 명의 순례자들이 모여 음식을 먹다 보면, 추가로 식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늘기 마련이고, 대부분 빈손으로 오기는커녕 최소한 본인이 먹을 양보다는 더 넉넉하게 가져온다. 가져오는 음식으로 인해 음식은 계속 늘어나고 우리 배의 용량한계로 인해 소비되는 음식의 총량은 밤이 깊어질수록 감소하니 결국 ‘음식 무한증가의 법칙’ 같은 말도 생긴 것 같고, 남은 음식은 다른 순례자들을 위해 알베르게에 남겨지게 된다. 프로미스타에서도 이 법칙은 정확했고, 거기에 대니엘의 기타 연주, 콜롬비아 출신 마리의 살사댄스교습 및 시범까지 더해져서 알베르게의 10시 소등만 없었다면, 벨로라도의 재즈라이브 공연의 밤에 이어서 또 한 번 아주 긴~~밤이 되었을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유튜브에서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듣기도 하고, 여기 와서 같이 걸으면서 듣기도 했던 까미노길에 대한 기대, 의견, 바람, 생각들은 대충 이렇다.


1. 아이맥스 극장 화면보다 수십 배는 큰 화면의 자연을 만나 감동하고,

2.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힘들게 걸어보면서 그동안 자신을 억누르는 무언가를 내려놓기도 하고,

3. 본인의 인생 2막에 대한 참신한 방향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도 하고,

4. 이성 또는 동성 애인과 헤어지고 무작정 길을 나서기도 하는 등등


뭔가 멋지고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고 숭고하고 때로는 드라마틱하기도 한 형이상학적인 말들을 많이 얘기한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면 남는 것은 사진과 오늘 밤처럼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같이 보내는 즐거운 시간에 대한 기억들뿐 아닐까? 아니다. 요즘은 이메일이나 SNS연락처도 남는다.


그렇고 보면 사실은 까미노길에 온 이유는 멋지고 그럴싸해 보이는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아니라 이렇게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야말로 진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강하게 올라온다. 이것이 바로 이 길의 목적이 아닐까? 인생 그거 별거 아니다. 같이 즐거우면 되는 거 아닌가?



배낭


토요일에는 마트가 일찍 닫는다. 일요일에는 마트가 아예 문을 닫는다. 작은 마을에 머물 때면 마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물건이 별로 없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마을에 마트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토요일이나 아니면 다음 목적지 마을에 마트가 없을 경우에는 미리 장을 본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그랬는지, 그냥 마트에 갔을 때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평상시보다 많은 양의 장을 봤다. 토마토, 와인 한 병, 꿀 한통, 치즈 정도밖에??? 넣지 않은 것 같은데 배낭 무게가 어제와 다르다.


난 조금밖에 안 샀는데, 혹시 이 동네는 예전의 미드 X-file에서 나온 것처럼 외계인이 어떤 요상한 조작을 해서 이곳은 중력이 다른 지역보다 더 센 지역일까? 한 발 한 발 내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느낌도 확실히 다르고, 발걸음마다 발목, 무릎, 골반, 배낭 아래쪽에 위치한 내 모든 관절에 그 무게가 리얼타임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이렇게 그 충격을 흡수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내 몸 깊숙이 안쪽에 위치한 뼈까지도 그 충격이 느껴진다. 특히 제일 무거운 그 와인, 겨우 2유로밖에 하지 않은데, 사실 장본 것을 모두 합쳐도 만 원어치 정도이다. 그냥 장을 보지 않고 도착지 식당에서 메뉴 델 디아를 사 먹으면 1인분에 12~15유로 정도이니까 바꿔 말하면 이만 오천 원만 더 쓰면 가볍게 갈 수 있을 텐데….


그런데 한편으로는 나는 어깨에 묵직하게 걸쳐지는 배낭의 느낌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무겁기는 하지만 중력에 완전 투항해서 툭툭 떨어지는 발걸음들이 나를 정말로 진지한 순례자인 것처럼 느끼게 해 준다. 동키 서비스로 짐을 미리 보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갈 수도 있겠지만, 가벼운 발걸음보다는 무거운 발걸음이 이 길을 걸었던 천년 전의 그 진지한 순례자와 싱크가 더 잘 맞는 것 같다. 또 3천 원밖에 하지 않는 와인을 버리고 가볍게 갈 수도 있지만, 도착 후에 씻고 나서 마실 때 그 즐거움을 상상하면서 가져간다. 어리석다….




우리 뇌 전두엽의 앞부분인 전전두엽의 역할 중에 ‘Gratification Postponement (욕구충족 지연)’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찾아봤더니 지금 당장 주어지는 욕구나 보상 대신에 그 후에 오는 더 큰 즐거움을 얻기 위해 참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전전두엽은 특히 인간이 많이 발달되어 있다고 한다. 너무 심하게 발달한 사람은 다음 생에 복을 찐하게 받기 위해서 이번 생은 그냥 희생도 하는 정도라고 하니, 확실히 인간의 전전두엽은 ‘울트라’ 비범한 것 같다. 아무튼 내 전전두엽 덕분에 난 대여섯 시간 후의 보상(와인 한잔)을 상상하면서 힘들지만 던져 버리고 싶은 10kg 넘는 배낭을 메고 간다.


힘든 게 싫다면 아예 까미노길을 오지 않으면 되고, 그래도 까미노길이 보고 싶어서 왔다면, 버스나 택시 타고 가서 봐도 된다. 하지만 어차피 고생하러 온 까미노길, 나는 한번 끝까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 봐야겠다. 내 전전두엽 화이팅!!!




[1] ‘Peer pressure’는 동료압력이라고도 하고 특정의 또래집단(Peer group)에서 의사결정을 실시할 때 다수의견에 따르도록 하는 압력을 의미한다. ‘Self pressure’는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Peer pressure’에 댓구해서 제가 만들어 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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