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5, 나는 선택받았다 1.

Fromista에서 Carrion de Los Condes까지

by Sal

오늘은 지금까지 출발시간 중에서 제일 일찍 나선 것 같다…. 6시 40분. 아침 일찍 나오니 캄캄한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도 보고, 오로지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길을 조용히 걸을 수도 있고, 덥지도 않고, 사방이 어두우니 온전히 걷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늘은 도착지까지 길바닥의 상태도 좋고 무엇보다도 일직선이다. 아자아자!!!



며칠 전부터 이마 한가운데와 왼쪽 눈썹 윗부분이 이상하게 아프고 간지럽다. 참아보았지만 점점 심해져서 항생제도 먹어보고 연고도 발랐지만 효과가 없다. 처음에는 간지럽기만 하더니 점점 멍든 것처럼 아프고 상처도 아픈 부위도 더 커지는 것 같다. 까미노길에서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여자들은 뒤로 묶고, 남자들은 자고 일어나면 고양이 세수를 하면서 대충 머리의 새집만 처리한 채로 다니기 때문에 나도 이마의 상처가 자연+다행스럽게 머리카락에 가려지기는 했다. 하지만, 상처가 커지다 보니 가끔 사람들에게 들키면 어디서 넘어졌냐고 걱정스레 물어본다. 더구나 이마에 상처 난 부분이 모자 앞부분의 안쪽과 딱 닿는 부분이라서 모자를 쓸 때마다 아프고 더 간지럽고 짜증이 제대로 난다. 동시에 마음 한 구석에서는 상처의 원인을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 무슨 신종 피부병 아닌가 하는 염려가 되기도 한다.


요즘은 일찍 출발하고 일찍 도착하니 오후에 시간이 좀 난다. 오늘 도착한 동네는 중세시대에 세워진 교회가 많아서 어떤 것은 800년, 900년 전, 또 다른 교회는 2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무지 무지(無知)한 내 눈에는 전혀 차이가 없지만 그래도 저 거칠거칠한 돌벽돌이 거의 천년? 전부터 이 근처에서 있었다고 하니, 오래전에 바이킹들이 저 돌 가지고 벽돌 쌓기 놀이를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상상을 하면서 천천히 산책을 한다. 걷다 보면 Plaza Mayor, 대광장이 나오고, 늘 그렇듯이 광장 옆에 Ayuntamiento 시청이 있고 그 주변에는 식당과 바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서 부르고스 이후 못 만났던 까미노길 전문가인 피터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감기에 걸려서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쉬는 바람에 일정이 지연되었고 덕분에 오늘 우리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감기는 이제 괜찮다고 하시면서 내 이마 상처에 대해 툭 물어본다. 무슨 피부 트러블일 거라고 답했더니 상처 난 자국들이 모여 있는 형태가 아마도 베드버그 같다고 한다. 허걱!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버그를 내가!!!


나는 불치병을 몇 개 가지고 있다. 우선 허리 디스크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과민성 대장증상과 무좀, 어른이 된 후로 추가된 역류성 식도염,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원인 모를 이명, 온도가 0도 근처만 되면 손발이 차가워지는 레이노 증후군이 내 불치병들이다. 이 불치병에 추가로 나는 좀처럼 국내에서 보기 어려운 열대풍토병 뎅기열도 내 병력 중에 하나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어서 베드버그가 내 병력에 추가되었다. 간지럽고 아프기는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그냥 낫는단다. 나도 모르게 허허허 웃음이 나온다. 아직까지 베드버그 말로만 들었지 본 적은커녕 물린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내 바로 아래 침대에서 잤던 A도 말짱한데, 하필 나만…. ‘역시 나는 선택받았다.’


나중에 까미노길을 마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 물린 자국은 쉽게 사라지기는커녕 집에 돌아온 후로도 오랫동안 잘 보존되었다. 그래서 내 까미노길 사진을 보면 어느 시점 이후에는 이마가 보이는 사진이 하나도 없다. 한 번쯤은 이마 한번 시원하게 까고 까미노길 사진 한 장을 남겨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시원한 사진은 찍지 못했다. 그리고 까미노에서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집 밖을 나설 때에는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다닌다.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순도 100%의 내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내 경우는 베드버그 증상이 남들보다 훨씬 더 심하고 오래갔던 편인데 그 이유는 까미노길을 걸으면서 내 체력 또는 면역력이 약해져서 내 몸의 알레르기 반응이 더 심하게 나타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왜냐하면 까미노길에서 돌아온 후 최근 나에게 또 새로운 불치병 하나가 추가되었다. 스키터(Skeeter) 증후군이라고 모기에 물리면 나타나는 이 증후군은 주로 아이들이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나타나는데 모기의 침에 있는 단백질 성분에 대한 내 몸의 이상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집에 돌아온 후에 모기에 한번 물리면 일주일 넘게 엄청난 간지러움과 물집을 동반한 이상피부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쉽게 끝낼 수 있는 간지러움이 아니다. 정말 정말 정말 정말 간지럽다. 그래서 이 더운 나라에서 밤에 나갈 때마다 긴 팔 긴 바지를 꼭 챙겨 입고 나가야 할 정도로 ‘모기 포비아’ 증상을 보였는데, 다행히 서너 달이 지나고 체력이 회복되더니 다행히 그 증상이 사라졌다. 체력이 약해지면 또 생기려나?


그분이 계신다면 도대체 나를 어디에 써먹으려고 도대체 이런 테스트를 계속하시는 걸까? 아무리 내가 선택받았다고 하지만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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