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Condes부터 Calzadilla de la Cueza까지
발목이 아프다.
특별히 어디를 삐거나 다친 적도 없는데 오늘의 목적지를 1km 정도 남겨놓고 갑자기 생뚱맞게 괜히 발목이 아파온다. 하지만 갈 길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냥 버티고 참고 걷는다. 한편으로는 사실 딱히 다른 방법도 없으니 포기하고 그냥 걷는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약국에서 산 크림을 바르고, 주무르고, 압박붕대를 감고, 좀 쉬고 등등을 하면 나아지겠지 생각하면서 참고 걷고 있다. 내일 아침이면 좀 낫겠지. 제발….
사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군대에서의 100km 행군을 제외하면 이렇게 풀타임으로 몸을 혹사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제는 연식도 제법 된 몸이 갑자기 뜬금없이 괜히 무려 800km를 걸어보겠다고 나서니, 몸이 좀 반항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는 반항이 좀 거칠다. 그래도 나름 1년 넘게 체력훈련도 하고 걷기 연습도 했는데…. 아무튼 내 몸은 요즘 이렇게 지낸다.
거의 매일 세면대에서 줄줄 흘릴 정도는 아니지만 코피가 나고
양쪽 새끼발가락의 발톱[1]은 디스크, 맹장에 이어서 자체 선정 역대 3위 통증으로 이미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 새끼발가락의 물집은 다행히 거의 나았고
오른쪽 종아리가 붓고 아픈 증상은 나아지는 중이지만 여전하고
오른쪽 발뒤꿈치 부분은 언제 그랬는지 나에게 보고도 없이 퍼렇게 멍이 들었다가 현재 낫는 중이고
이마와 눈썹에 생긴 베드버그 상처는 간지럽고 아픈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내 인상을 아주 험악하게 만들어 놓았고
그나마 버틸만하지만 배낭이 좀 무거워질 때마다 왼쪽 골반이 찌릿찌릿 아프기도 하고
그리고 오늘은 뜬금없이 오른쪽 발목이 아프다. 그런데 이 발목 통증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할 때까지는 물론 나중에 집에 돌아온 후에 완쾌되기까지 한 달도 넘게 걸렸던 아주 시커먼 다크호스 통증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전혀 안 아프다. 여기 스페인의 새파란 하늘처럼 아주아주 맑다. 까미노길에서 머리는 별로 안 쓰는 모양이다. 내 머리는 거의 아침에 눈을 뜨고 나면 아주 ‘개점휴업상태’이다. 까미노길에서는 머리보다 몸이, 그중에서도 특히 하반신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정신이 몸을 지배하기는커녕 몸에게 제발 아프지만 말아달라고 사정을 한다. Please…
당신이 잠든 사이
휴대폰은 자면서 침낭 속에 넣고 잔다. 이층 침대 위에서 잘 경우에는 난간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바깥에 그냥 두면 좁은 침대에서 떨어뜨릴까 불안하기도 하고, 약간의 분실 걱정도 되고, 밤이나 새벽에 깨면 시간 확인을 위해서도 항상 침낭 속에 넣어두고 잔다.
며칠 전부터 내 휴대폰에 조금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글자를 입력하려고 하는데 자판이 전혀 본 적도 없는 이상한 지렁이들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판이 태국어와 아랍어로 바뀌어 있었다. 내 휴대폰에는 당연히? 영어와 한국어밖에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태국어와 아랍어 자판이 추가되었던 것이다. 분명히 난 추가한 적이 없는데, 혹시나 내가 너무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니어서 추가했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몇 마디라도 하는 중국어나 일본어는 추가했을 수도 있겠지만 태국어나 아랍어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결국 내가 뭘 잘못 만져서 추가되었겠지 하고 그냥 넘어간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겠지 생각하고 그냥 키보드 설정에 들어가서 정리했는데 며칠 후에 또 생긴다. 이상하다. 이상해….
누군가가 내 폰을 해킹을 해서 원격조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노무시키들이 내 통장에서 돈을 빼 가기도 하고, 내 컴퓨터를 가지고 지네 맘대로 써먹기도 하는 세상이니, 내 폰 가지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 불안 불안하다. 여기에서 내 휴대폰에 문제가 생기면 처리하기도 힘든데…. 요즘에는 왜 이렇게 나쁜 놈들은 갈수록 똑똑해지고 많아지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참… 에고….
날마다 잠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그날그날 찍은 사진 정리를 한다. 휴대폰 갤러리에 들어가 보니 얼핏 보기에 스크린샷 폴더에 이미지가 많이 저장되어 있다. 긴급히 저장할 이유가 없으면 나는 별로 스크린샷 기능을 사용하지도 않는 편인데 무려 24 개의 스크린샷이 저장되어 있다. 오래전에 캡처해 둔 이미지들이 너무 많으면 요즘처럼 사진을 많이 찍느라 저장공간이 부족할 때에는 삭제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이미지들을 정리하기 위해서 스크린샷 폴더를 클릭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내 휴대폰 화면에 나타난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우선 스크린샷에 저장된 정체불명의 화면들의 주요 키워드들만 아래에 하나씩 적어본다.
긴급전화,
Smart Things,
기기제어,
데이터 절약모드 사용 중,
모바일 데이터 사용중지됨,
진동 사용 안 함,
인증서 뷰어,
인터넷 사이트에 연결할 수 없음,
인터넷 연결 없음은 무려 9회,
긴급정보 알 수 없는 이름 등등
이게 뭐지… 아… 음… 허걱….
처음에는 이게 머선 일일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았다. 내 엉덩이가 이렇게 스마트한 줄은 꿈에도 몰랐고 내가 잠든 사이에 침낭 속에서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한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로밍을 신청을 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인터넷 데이터 연결이 되었다면 엄청난 휴대폰 로밍 요금폭탄을 맞을 뻔했다. 일단 다 지우기는 했지만 오늘 밤에도 내 엉덩이가 또 무슨 일을 하는지 두고 봐야겠다.
[1] 나는 손톱이나 발톱이 빠질 때 얼마나 아플까 하는 두려움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까미노길에서 돌아온 후에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쪽 새끼발가락 발톱이 모두 빠져 있는 것을 알았다. 영화처럼 고문을 한다면 모를까 별로 안 아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