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zadilla de la Cueza에서 Sahagun까지
어제는 이스라엘에서 현대무용을 하는 일본인 미치루와 동생 겡끼를 또 만났다. 부르고스 오는 길에 같이 길을 헤매다가 우리는 목적지까지 오고 미치루와 동생 겡끼는 부르고스 바로 전 도시에서 머물렀는데 오늘 또다시 만나게 되었다. 알베르게 근처 식당에서 처음으로 순례자메뉴를 같이 먹으러 간다. 우리 옆침대에 묵는 한국인 모녀도 동행한다. 대화를 하다 보니 겡끼와 딸이 동갑이네! 잘 통하지 않는 말이지만 서로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SNS도 교환한다. 재밌겠다. 물론 지금의 나도 그들만큼 아니 충분히 그 이상 재밌지만 역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좋아 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니면 그냥 젊음이 부럽나?
어떻게 하다 보니 한국인과 식사를 하게 된 경우는 여행 시작 후 지금까지 딱 한 번 뿐이었다. 딱히 내가 한국 사람을 피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말이 잘 통하고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이것은 한국인이나 외국인들도 모두 똑같은 것 같다. 다만 나는 여행이라는 것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볼거리도 보고, 새로운 먹거리도 먹어보는 ‘새로움의 종합선물세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확률적으로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생김새의 외국인들과 어울릴 경우에 나와 같은 문화, 같은 언어, 같은 생김새의 한국인과 어울릴 경우보다는 여행의 그 중요한 목적을 달성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래도 내 생각이 이러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결과가 나온 듯싶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여행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젊은 친구들이 가끔씩 그 목적을 깜박 잊고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조금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타지에서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면 말도 편하고 먹을 것도 익숙하니 같이 먹고 어울리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적어도 여행의 목적을 ‘다양한 경험’으로 세웠다면 그 목적에는 부합하는 모습은 아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그것도 이곳 스페인까지 오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했을 텐데….
K라는 몸짱 친구는 부르고스 알베르게에서 처음 만났다. 부르고스 공립 알베르게의 큰 다이닝룸에서 긴 머리카락과 상의 탈의로 건장한 육질을 자랑하면서 처음 본 우리에게 배낭전문여행가 포스로 “이 근처 한국식당 맛집 알려드릴까요?”라고 먼저 말을 걸어왔다. K는 혼자 여행 중이었는데, 그 이후에 다시 만났을 때에는 가는 길에 두 분의 어르신을 만났는지 알베르게에서 그분들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었다. 나도 옆에서 파스타를 준비하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눠보니, 두 분 어르신과 같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런데 혼자 슈퍼에서 장을 보고 왔다고 하고, 지금도 혼자 주방에서 참치 비빔밥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친화력 좋은 K는 우리에게 합석을 제안했지만, 우리는 사양하고 대신 나중에 우리 파스타를 조금 나눠주니, 참치비빔밥이 부족했는지 우리 파스타를 고맙게도 맛있게 먹어주었다. 처음 K를 만났을 때는 일단 K의 복장이 선뜻 가까이하기에 쉽지 않은 상태였고, 우리가 막 나가는 와중에 말을 거는 바람에 그냥 스쳐 지나갔지만, 이곳에서 두 명의 나이 든 분들을 혼자 챙기는 것을 보니, 참 기특한 총각이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다시 K를 보았을 때에는 아주 널찍하고 햇살 좋은 뒷마당이 있는 다른 알베르게에서 또 혼자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엄마와 대학생 딸, 그리고 또 다른 엄마와 어린 남자아이, 이렇게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아이는 제외한다고 해도, 모녀와 아이의 엄마는 주방에 보이지가 않는다. 조금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다른 비슷한 또래의 외국인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서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같이 외식을 나가기도 하고 같이 술도 마시기도 하는데….
또 다른 날에는 걷다가 어느 바 겸 마트에서 K와 우리만 한 테이블에 앉을 기회가 있어서 요리가 취미냐고 살짝 물어보았다. K는 처음에는 그냥 나이가 많은 분들이어서 도와드렸고 또 본인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냥 주방에서 요리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한 꼰대스럽게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이런 내용으로 얘기한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래도 꼰대스러운 것 같다.
“어려운 시간 내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서 머나먼 스페인까지 왔는데, 그냥 한국에서처럼 한국분들과 한국식 밥 만들어 먹고, 같이 어울려 소주 마시고, 한국이야기만 한다면, 힘들여서 여기에 온 이유도 없고 보람도 없지 않을까?”
물론 그러면 당연히 편하고 재미있겠지만,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여행을 왔으면, 말이 안 통해서 좀 답답하고 음식이 입맛에도 맞지 않고 생활도 익숙하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좀 참고 노력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저 익숙하고 편한 것만 하려면 한국에 그냥 있지 여기에 왜 왔는지?
힘든 사람 도와주고 베푸는 것이 나쁜 행동은 아니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에 조금 더 충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곡??’이란 영화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그랬잖아 “뭣이 중헌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는 경향이 절대로 없다고 스스로 주장하고 있지만 오늘 아주 조금만 그런 경향을 띠면서 한마디 한다면 이렇다. ‘한국에서의 습관을 멈추지 못하고 또는 쑥스러워서 또는 뻘쭘해서 주변의 한국 사람에게 "같이 드시지요" 말을 건네는 순간 당신이 여기에 온 취지는 무색해질 수 있다.’ 적어도 여기 까미노길을 걷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그 유교사상은 잠시 주머니 구석에 넣어두고, 아니 주머니에서 빼서 걷는 길에 던져버리고 이곳 스페인까지 온 본연의 목적에 제발 과감히 몸을 던졌으면 하는 맘이 든다.
난 꼭 이런 목적을 꼭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오늘도 누가 우리에게 같이 밥 먹자는 사람이 없으니 또 어찌어찌하다 보니 어제 순례자 메뉴를 같이 먹었던 일본인 순례자 남매 미치루, 겡끼와 또 같이 저녁을 먹는다.
아무튼 적어도 여행은 오롯이 ‘너! 당신! Tu!, Yourself!’를 위한 시간이 되어야 한다. K는 지금 까미노길을 마치고 형들과 세계일주를 하는 중이다. 형들만 챙기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한 세계일주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