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걷기 시작, Toby야!!, 엄마!!!

Saint-Jean-Pied-de-Port에서 Roncesvalles까지

by Sal

새벽 4시에 기상, 5시 반 출발, 오리손 11시 반쯤 도착, 론세스바예스 오후 3시 도착



어제 새벽에 파리 공항에 도착한 후 공항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고 바로 생장으로 이동했다. 덕분에 피로가 아직 고스란히 온몸에 남아있지만 긴 여정의 첫날이라는 부담감 덕분인지, 시차 덕분인지, 잠자리가 바뀐 덕분인지 일찍 잠에서 깼다. 캄캄한 도미토리 안을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니면서 씻고 배낭을 싸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도 이런 혼성 도미토리에서 이런 새벽시간에 이런 순례길 준비가 처음이니,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쉬지 않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려 출발 준비를 끝냈다.


다섯 시 반 드디어 까미노길 출발이다.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아마도 우리가 이 동네에서 오늘은 1등 출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베르게 문을 열고 밖에 나서자 캄캄한 골목길엔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첫 발걸음, 첫 증명샷, 첫 골목샷, 모든 것에 ‘첫’ 자를 붙여가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걷기 시작한 지 약 3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드디어 순례자 한 명이 “부엔 까미노(Buen Camino [1])”를 돌멩이 하나 ‘툭' 던지듯이 말하면서 ‘횡’ 하고 지나갔다. 10kg 배낭을 메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무지막지한 오르막길을 보는 장면마다 ‘와~’ 탄성을 내뱉으며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면서 걷는 중이었기 때문에 사실 우리는 말 그대로 거북이 속도였다.


까미노길 첫날의 첫 휴식처인 피레네 산맥의 오리손(Orisson) 산장은 생각보다 꼭꼭 숨어있다. 저 멀리 보이는 길의 끝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이제는 나타나겠거니 하고 걸어가면 산장은 안 보이고 저 멀리 또다시 야속하게 산길이 나타난다. 스스로에게 조금만 참으라고 다독이면서 이번에는 왼쪽으로 돌면 나타나겠지 하고 가보면 오리손 산장이 아닌 다른 사설 알베르게가 나온다. ‘조금만 더 가면 돼. 한걸음만 더 가면 오리손 산장에서 커피 사 줄게.’ 먹을 거로 유혹해 본다. 당근과 채찍을 너무 많이 줬는지 이제는 당근도 싫어진다. 결국 기대를 접고 한 발 한 발 그저 발을 옮기다 보니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언덕을 ‘획’ 도니 ‘짠’ 하고 오리손 산장이 나타난다. [2]


오리손 산장에서 마신 밀크커피, 카페콘레체(Café con Leche)와 스페인식 감자가 들어간 오믈렛, 토티야 데 파타타스(Tortilla de Patatas) 그리고 생장 카르푸에서 산 바게트를 같이 먹으니 맛있었다는 말을 하려고 오리손 산장 이야기를 시작한 건데 너무 옆길로 빠진 것 같다. 피레네 산맥 위에서 우리가 커피와 토티야를 먹는다는 것도 실감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토티야 데 파타타를 먹을 때 꼭 직원에게 케첩을 달라고 해서 같이 먹을 것! 한 개가 아닌 두 개!


오리손 산장에서 신발끈을 조이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꾸물꾸물한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이 아니라 스멀스멀 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비는 오늘의 도착지인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가는 내내 오락가락하면서 우리를 괴롭힌다. 처음에는 그냥 비를 맞으면서 걸었지만 계속 맞기에는 좀 굵은 가랑비라서, 아직 익숙해지기는커녕 개봉도 하지 않은 새 비옷을 꺼내 입는다. 그런데 조금만 걷다 보면 금방 비가 그친다. 비도 오지 않는데, 우의, 한마디로 커다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걷기에는 너무 덥고 발에도 걸리적거린다. 그래서 멈춰 서서 비옷을 벗고 배낭을 내리고 대충 정리해서 가방에 걸쳐 넣고 다시 배낭을 메고 걷는다. 그런데 몇 발자국 못 가서 또 비가 온다. 이런 dkjwdskfj...!! 다시 배낭을 내리고 비옷을 꺼내고 배낭을 메고 그 위로 비옷을 덮는다. 비가 좀 그쳐서 잠시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으면, 다 먹기도 전에 “이제 고만 일어나서 계속 가야지.”라고 말하는 듯이 또 비가 온다. 다시 비옷을 입고 걷다 보면 해가 반짝! 이번에는 나도 더 이상 속지 않고 비옷을 배낭에 넣는 대신에 그냥 손에 들고 걷는다. 역시나 몇 걸음 못 가서 또 비다! 이날 몇 번을 불렀는지 모르겠다. ‘또 비야? Toby야?’. 어렸을 적에 티비에서 본 미래소년 코난의 친구이름이 또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유튜브의 수많은 까미노길 관련 영상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보통 알베르게에 도착을 하면 먼저 씻고, 짐 정리하고, 여유 있게 마을 한 바퀴 구경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달랐다. 그것은 단지 멋진 영상일 뿐, 첫날 우리의 실상은 이러했다.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멋져 보이는 웅장한 벽과 건물이 보였다. 하지만 동네구경은커녕 그 수백 년 된 중세풍의 멋진 건물도 우리의 관심을 1도 끌지 못했다. 알베르게 체크인 창구는 중세시대 성 안에 있을법한 높다란 천장의 복도를 지나게 되는데,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이 복도를 끙끙, 헥헥 신음소리를 내며 나름대로의 육체적인 고통을 외부로 표출하면서 절뚝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우리 역시 도미토리와 식당만을 겨우 왔다 갔다 했다. 원래는 정신건강용으로 최종 목적지까지 배낭에 가지고만 다니려고 했던 딱 두 개의 신라면을 바로 이틀째 되는 날 끓여 먹고, 빨래하고, 씻고, 바로 코… 했다.


벌써 발바닥에 물집도 생기고 무릎도 어깨도 아프고, 그냥 온몸이 아프다. 움직이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아프다. 순례길이 힘드네. 힘든 거였구나. 역시 본 거랑은 다르네.


론세스바예스에서는 12세기 경부터 이 길을 지나다니는 순례자들을 돌보았다는데, 그 몇 백 년 되는 고건물을 수리해서 운영 중이라는 공립 알베르게가 우리의 까미노길 첫 번째 알베르게였다. 3층 건물에 약 200개 침상이 있는데 배정받은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넓은 방에 좌우로 침상이 2열 종대로 펼쳐져 있다. 가슴 시원하게 높다란 천정을 굵직굵직한 나무들이 듬직하게 딱 받치고 있고, 그 군데군데에 귀여운 창문이 하나씩 있다. 침상이 많아서 그렇지 천장만 보면 마치 원목으로 지어진 통나무집에 온 것 같다.


그런데 밤이 되니... 상황이 좀 달라진다. 말레이시아에 살다 보면 비록 도시에 살고 있지만 군데군데 도로 옆에 작은 언덕과 숲들이 있다. 새벽이나 오후 늦게 산책을 가다 보면 길 옆 숲 속에서 소리가 난다. ‘으르롱, 쾤 고로ㄹㄹㄹ’ 원숭이, 개, 멧돼지, 새들이 서로 티격태격을 하는지 장난을 하는지 요상한 소리들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이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그 소리를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 시차로 인해서 나는 3 시경에 잠에서 깨서 침대에서 버티다가 4 시경에 겨우 기상을 했다. 그리고 그그그 그 소리를, 미처 글로는 묘사될 수 없는 그 소리들을 들었다. 이 소리는 여러 야생 짐승들의 소리가 어우러진 ‘야생 오케스트라’의 소리였다. 역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니 그 소리도 다양했다.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인간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지구상의 다양한 동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4시 반쯤 이런 나의 잡다한 생각들을 한방에 정리해 버리는 또 다른 소리가 있었으니……. 예전에 간단한 휴대폰 게임 중에 과일 자르기 게임이 있었다. 여러 과일이 화면 위로 튀어 오르면, 손가락으로 화~~악 그어서 한방에 그 과일들을 잘라버리는 게임이다.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엄마~~~’.

그리고 약간의 정막이 흐른 후에 좀 더 큰 소리로

‘엄마아아~~~~~~~~~’.

그리고 당황스러운 부스럭 소리

서둘러 침낭 지퍼를 여는 소리 ‘지이이익’

소곤소곤 ‘엄마…’

다시 정막…

그리고 배경음악처럼 여기저기에서 크크크, 낄낄낄, hohoho


추후에 이 모자를 길 위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 후에 알게 된 내용이지만, 얘가 자다가 코피가 조금 났고 당황한 아이가 엄마를 불렀는데, 엄마가 귀마개를 하고 자느라 아이의 소리를 처음에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어둠의 정막을 화악 찢어버리는 소리가 서너 번이나 울리게 되었다고.


엄마마아ㅏ아아아아아아아….



[1] Buen Camino는 직역하면 ‘좋은 길’이라는 뜻이지만 아마도 ‘좋은 길이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순례자들 간의 공식 인사말이다. 예전 중세시대에는 ‘울트레이아(Ultreia)’라는 인사말도 사용했다고 한다.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인데, ‘~너머, beyond’라는 의미라고 한다. 좋은 길(Buen Camino)도 좋지만 역시 옛 것(Ultreia)이 왠지 더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 같다.


[2] 참고로 이 기억은 아주 녹초가 된 내 몸 상태에서 느꼈던 기분을 썩 훌륭하지도 못한 내 기억력으로 새벽에 일어나 비몽사몽 중에 복기 중이므로 정확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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