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 생존본능

Roncesvalles에서 Zubiri까지

by Sal

또 네 시에 기상해서 뒤척뒤척, 다행히 여섯 시에 알베르게 관리자가 불을 모두 켜버린다. 대부분 날씨가 더워지기 전에 일찍 출발을 하고 보통 공립 알베르게 체크아웃 시간이 아홉 시 전후라서 여섯 시에는 불을 켜서 일찍 쫓아내는 분위기이다.



둘 다 무릎이 아프다.


‘본능적인 행동’이라 함은 생후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은 행동 즉, 생물학적 요소의 발현만으로 인해 행해지는 행동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생물들이 비슷하겠지만 인간으로서 생존 본능은 음식, 물, 잘 곳, 그리고 안전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바로 그 생존본능적으로 살고 있다.


역시나 둘째 날도 동네 구경은 뭐 먼 나라 이야기이다. 오늘 밤을 묵을 알베르게까지 오는 길에 본 구경으로도 차고 넘친다. 둘째 날도 무사히 도착했으니 씻고 먹고 쉬는 것 외에는 그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면서 관리자 언니에게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가 어디 있냐고 물으니 오늘은 ‘일요일(Domingo)’이라고 양손으로 손가락 따옴표를 붙여서 답을 해준다. 슈퍼는 일요일에 문을 모두 닫는데 딱 한 곳이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고 한다. 그런데 2시 15분에 닫는다고 한다. 현재 시간이 1시 45분… 오옷!


배낭은 그냥 계단 옆에 던져 놓고 바로 알베르게에서 튀어나왔다. 아픈 무릎에도 불구하고 절뚝거리면서 뛰었다. 급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저절로 뛰어진 것 같다. 역시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생존 본능’이다. 까미노길을 시작하면서 스페인에 가면 와인이 저렴하다는 말을 듣고, 1일 1 와인을 마셔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는데, 아직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생장에 도착한 날은 첫날이라 패스했다지만, 어제 묵었던 론세스바예스에서도 마트는커녕 알베르게 건물도 벗어나지 못했었다. 오늘은 마을에 도착하면 드디어 까미노길 기념 첫 와인을 마시기로 했는데 또 일요일???이라 마트 문이 다 닫는다고? 안돼!!! 오늘은 기필코 와인을 마셔야지…. 와인도 생존 본능에 포함될까?


알베르게에서 바로 나와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쭉 갔다. 다리를 넘어왔던 길 쪽으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코너에 자그마한 가게가 하나 있다. 드디어 ‘와인’ 한 병과, 바게트, 하몽, 올리브, 약간의 샐러드용 채소 그리고 내일 걸어가면서 먹을 식량으로 사과를 확보했다.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서 천천히 씻고 침대 정리하고 잠 잘 준비를 모두 해 놓는다. 그리고 느지막이 공용 부엌으로 내려와서 유튜브에 자주 보이는 요리사 제이미 올리?머시기처럼 샐러드를 대충 뚝딱뚝딱 만들어서 와인과 바게트로 저녁을 먹는다. 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고 나서 처음으로 정신을 차리니 이제야 알베르게 시설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고, 같이 걷는 순례자들 얼굴도 보이고 주변환경이 인지가 되는 것 같다.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정보 인지 능력이 약화된다고 한다. 특히 상대방의 얼굴 감정을 인지하는 능력이 약화된다고 하던데 내 경우는 오로지 내 다리밖에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알코올의 도움으로 옆 친구들과 대화도 하고 아무튼 이제 순례자의 일상이 드디어 시작되는 느낌이다. 이날부터 우리는 거의 ‘1일 1 와인’을 했다. 나중에 가다 보니, 순례자들이 쉬어 가는 공간에 누군가 이렇게 의미심장한 낙서를 해 놓았다.


2022-10-10 10.09.59.jpg ‘No Vino, No Camino! [1]


수비리(Zubiri) 알베르게에서 만난 친구들은 앞으로 계속 등장할 친구들이니 먼저 간단히 소개를 한다.


프랑스 코냑 출신이고 항상 1등 출발하는 조단 Jordane, 술 코냑과 동향이다.

프랑스에서 온 프랑스어 선생님 피에르, Pierre

이태리 쪽 알프스 산아래에서 온 호텔리어 안드레, Andrea

브라질 살바도르에서 온 변호사 우고, Hugo

프랑스 비아리체에서 온 시인 쟝, Jean

일본 도쿄에서 온 오누이 무용가 미치루와 대학생 겡끼, みちる, げんき




[1] No Vino, No Camino! 와인이 없으면 까미노도 없다! No Giovanni No Cena! 지오바니가 없으면 저녁식사도 없다! Giovanni는 영어의 John처럼 흔한 이름인데, 아마도 유명한 식당 이름인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