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스트레스도 무게가 있을까?

Zubiri에서 Pamplona까지

by Sal


출발하자마자 30분도 안 됐는데 무릎 뒤쪽이 살살 아프더니 급기야 앞쪽까지 아프다.



너무너무 아프다. “어엌, 악” 비명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나온다. 아마도 그 무릎인공관절수술받은 분들이 수술 전에 이런 정도의 고통이지 않았을까 감히 예상해 본다. 오른쪽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내 종아리뼈와 허벅지뼈가 무릎에서 만나면서 스파크가 생기는 것처럼 ‘찌릿찌릿’하고 그 ‘찌릿한’ 전기가 무릎부터 머리끝까지 한방에 관통을 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이놈의 통증은 내 자율신경계를 통해서 전달이 되는 모양이다. 바로 옆에서 사람이 걸어가는데,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내가 창피하든지 쑥스럽든지 말든지... 도무지 내 지휘부 뇌의 통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픈 것도 괴롭고 이건 정말 쪽 팔린다.


진정 내 무릎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 상태라면, 걷기 시작한 지 이틀 만에 까미노길 완주는커녕, 버스 타고 까미노길을 완주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후아악 성질이 난다. 만약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이어서 급기야 집에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 혼자만 돌아가야 하나? 아마도 지금 같이 걷는 그 누구는 나만 여기에 버려두고 자기는 혼자 계속 가겠지? 이미 예매한 비행기표는 어떡하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집에 돌아가면 주변 사람들이 ‘어… 벌써 왔나?’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할 텐데 뭐라고 답하지?


한편으로는 내 무릎이 피레네 산맥을 넘다가 어디 잘못되었다면 나도 얘들 할머니처럼 무릎 수술까지 받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러면 두 달은 병원 입원에, 그 뒤로도 재활치료에, 수술은 어디 병원에서 해야 하지? 내 기억으로는 할머니 수술 때에도 많이 아프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그 보다 더 아플까? 병원비는 얼마 정도 될까? 여러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마치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쇼 화면 설정해 놓은 것처럼 한 페이지씩 슉슉 날아다닌다.


이런 와중에 내 머리 한쪽에서는 왜 나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을까 따지는 중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내 신체적 조건이 여기 까미노길을 걷는 사람들의 평균 이상 수준은 될 텐데 왜 나만 이럴까? 내 걸음걸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어제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내가 무릎에 심하게 부담을 줄 정도의 충격을 준 적이 있었나? 형사가 범인을 찾기 위해 CCTV를 돌려보듯이 어제의 여정을 아무리 다시 돌려봐도 특별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정도의 찌릿한 통증은 왜 생기는 걸까? 뭔가 내 무릎 근처의 신경이 자극을 받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이 프레젠테이션과 향후 예상 시뮬레이션과 통증원인분석이 진행 중임에도 아주 아…………주 천천히 내 다리는 한 걸음씩 옮겨가고 있다. ‘걷는다’라고 말하기에도 좀 창피할 정도이고, 마치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로 옮겨져서 막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일어나서 비몽사몽 걷는 환자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리막길에서는 좀 덜 아프고 약간만 오르막이 있어도 내리막길에서의 덜 아픈 것을 복수라도 하듯이 더 아프고.


거의 대부분 순례자들이 나의 ‘베리 베리 슬로우 워킹’을 보고 스틱 사용방법을 바꿔봐라, 가방 짐 무게를 줄여라, 곧 괜찮아질 거다, 등등 걱정+염려 한 마디씩을 하면서 지나간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걱정, 염려, 쪽팔림, 짜증, 등등 뒤섞인 혼돈의 상태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아프지 않은 척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그 와중에도 지나치는 사람들과 ‘부엔 까미노’를 교환한다. 마음속으로는 ‘부엔 까미노(Buen Camino)’는커녕 ‘페오르 까미노(Peor [1] Camnino)’지만...


한걸음 한걸음 참으며 걷다가 결국 잠시 앉아서 사과를 한 입 깨물면서 둘이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할지 대책회의를 했다. 그러다 가져온 비상약 중에 내 디스크 처방약, 그러니까 진통제, 소염제, 근육이완제, 위장약 세트가 내 무릎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먹었다.


흐악!!! 약을 먹은 지 한 30분 지나니 플라시보 효과인지 아니면 정말 약의 효과인지 훨씬 나아졌다. 으으으으 아아아아… 일단 오늘 목적지까지 가기는 가겠구나. 통증이 줄어든 것도 좋지만 그래도 이 까미노길을 걸어갈 수는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에 기분도 발걸음도 훨씬 가벼워진다.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서 바쁘게 프레젠테이션 중이었던 화면들이 마치 괴물 영화에서 두목 괴물이 쓰러지면 순식간에 같이 먼지와 재로 변해버리는 괴물의 졸개들처럼 사라져 버린다.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면 벌어질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먼지처럼 사라지니 발걸음이 가벼워진 걸까? 그럼 스트레스도 무게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제법 무거울 것 같다. 스트레스가 정말로 몸에 안 좋기는 한가 보다.


이렇게 오늘 걸어야 할 거리의 약 1/3 정도는 아주아주 힘들게 아프게 걷다가, 약을 먹은 후에는 좀 편하게…? 까지는 아니고 좀 덜 아프게 걸었다. 그 와중에 나 아직 살아 있다고 외치는 듯이 새끼발가락의 물집도 여전히 한몫하고 있다. 무릎이 아픈 것의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그나마 무릎과 새끼발가락 둘이 동시에 아픈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니면 동시에 아프지만 내가 하나씩만 느끼는지 모르겠다. 오늘 또 하나 깨우친다. 아마도 우리 몸의 통증 관련 채널은 멀티채널(Multi channel)이 아닌 단일채널(Single channel)인가 보다.


지금은 새벽 4시 반, 혼자 공용주방에서 감자를 삶는 중이다. 어제는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까르푸가 작다고 해서, 조금 더 걸어서 에로스키(EROSKI)라는 큰 마트를 갔다. 오랜만에 큰 마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나서인지, 아니면 피곤한 내 몸이 시키는 대로 많이 먹을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이베리코 돼지고기, 파프리카, 샐러드, 햄, 요거트, 바게트, 감자 등 대량의 식량과 와인을 확보했다. 덕분에 아침부터 뚝딱뚝딱 중이다.


이곳 팜플로냐(Pamplona) 숙소는, 알베르게를 찾아 헤매는 중 우연히 만난 조단이 추천해 준 곳으로 얼떨결에 찾아왔는데 상당히 유명한 곳인 것 같다. 낡은 원목 대문, 부스러지는 회벽 칠 된 돌벽, 지나치게 두꺼운 벽이 수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듯한 건물이다. 하지만 빈티지 느낌은 유지하면서도 내부 시설은 현대식으로 모두 수리가 되어 있다. 그런데 너무 트렌디했는지, 2층 복도의 바닥이 아래가 희미하게 보이는 반투명 유리로 되어있다. 마치 오징어게임에서 나오는 유리판 건너뛰기 미션처럼. 그리고 그 바닥 중 몇 곳은 깨진 차유리처럼 아직 형태는 있지만 유리판 전체에 금이 가 있기도 하고, 이미 깨져서 그냥 틀 위에 나무판만 툭 올려져 있는 곳도 있다. 그러니까 다른 곳도 깨질 수 있다는ㅋ… 오징어 게임!!!


2022-09-26 20.02.57-min.png 팜플로냐 알베르게 2층 복도의 유리바닥, 왼쪽으로는 침대와 오른쪽으로 난간들, 좀 무서워 보이지만 밟아도 될 듯... 하지만 시도는 해보지 않았다.



[1] 스페인어 ‘peor’는 영어로 ‘worse’, 한국어로 ‘더 나쁜’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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