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mplona에서 Puente la Reina까지
오늘은 출발할 때부터 미리미리 약까지 챙겨 먹고, 아자 아자!
그런데 Toby다. 부슬부슬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나는 오늘 가는 곳이 ‘용서의 언덕’이 아닌 ‘용사의 언덕’인 줄 알았다. 가다 보니 ‘Alto de Perdon’이라는 푯말을 보고 아 ‘용서’구나 하면서 부디 나의 무지를 꾸짖고 용서해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걸었다. 조금씩 경사가 있는 꾸준한 오르막길이고 그 언덕을 넘으면서부터는 꾸준함을 넘어서 아주 기나긴 급 내리막길이다. 무릎과 발목 조심!
여전히 발가락과 종아리 근육은 각자 맡은 바 업무를 매우 충실히, 아주 잘하고 있다. 샤워하면서 보니 종아리 뒤쪽의 통증 있는 부분은 빨갛게 변색되어 있고 손가락을 살짝 찌르면 멍든 것처럼 아프다. 종아리색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구나 하고 신기해할 정도이다. 하루를 쉬어야 하나? 고민, 망설임, 어물어물, 머뭇머뭇하다가 그냥 또 출발했다.
Zubiri, 스페인어에서는 z를 s로 읽는다. 그러니까 ‘주비리’가 아니라 ‘수비리’라고 읽는다. 그런데 ‘수비리’에 오다가 나중에 ‘수리비’가 더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여러 가지로 성가시다.
그래도 까미노 오기 전에 거의 1년 전부터 내가 태어나서 그때까지 평생 동안 한 운동보다 더 많은 시간의 운동도 하면서 나름의 체력관리도 열심히 했는데, 왜 이 많은 남녀노소 내외국인들 중에 도대체 왜 내가 아픈지 모르겠다. 쪽팔리게? 암튼 체력보충을 위해 유사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는다. 옆에서 신라면 끓여 먹는 일본인 오누이 미치루와 겡끼에게도 조금 나눠주고, 대만에서 온 마이크에게도 나눠준다.
마이크 왈 누가 그러는데 까미노길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Glenda Barry라는 사람의 의견인데 까미노길 프랑스루트의 전체 경로를 지리적인 특징에 따라 세 구간으로 나누고 이 길을 걷는 개인이 느낄 법한 변화 과정을 서로 매칭시켜 놓았다. 제법 흥미롭다.
"3 Stages of Personal Growth on your Camino Pilgrimage"
(까미노 순례길에서의 3단계 성장)
첫 번째 단계는 ‘체력적 도전(Physical challenge of Camino)’단계이다.
까미노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프랑스 생장(Saint-Jean-Pied-de-Port)에서 스페인 부르고스(Burgos)까지는 주로 산길과 오르락내리락 언덕 그리고 계곡길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계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체력을 그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단계이다. 보통 의사들이 추천하는 하루 만보 걷기는 까미노길을 걷다 보면 따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매일 최소 3만 보 전후가 된다. 거기에 밤마다 옆침대는 물론 전체 도미토리에 울려 퍼지는 코 고는 소리에 잠도 잘 못 잔다. 그리고 일상생활이면 주말에는 쉬겠지만 여기에서는 월화수목금금금이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 덕분인지 우리의 몸은 매일 3만 보+ɑ의 고행 + 추가고문에도 잘 적응을 한다. 매일 새벽에 떠오르는 해를 보고, 동료 순례자들과 대화를 하고, 와인을 마시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발바닥 물집상처는 서서히 아물고, 온몸의 통증도 점차 줄어들고, 필요 없는 짐을 하나 둘 버리면서 발걸음도 조금씩 가벼워진다. 이 설명이 맞기는 맞다. 하지만 내 오른쪽 다리는 다윈의 진화론을 모르는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건지 매일 새로운 통증처럼 집요하게 나를 괴롭히고 있다. 10kg을 넘게 맨 내 어깨만 이제 제법 첫날 둘째 날의 통증을 뒤로하고 더 이상 내 관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두 번째 단계는 “나, 개인의 성장을 향한 감정의 여정 (The Emotional Journey to Personal Growth)”단계이다.
이 단계는 부르고스(Burgos)에서 레온(Léon)까지의 구간으로 이곳은 끝없이 펼쳐진 밀밭과 옥수수 밭 사이를 걷는 메세타[1] (Meseta) 구간이다. 보통 걷기 시작한 지 2주가 지나면 우리 몸은 매일 짐을 풀고 꾸리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지만 우리 마음은 이 초록색 또는 갈색의 바다를 지나면서 새로운 방랑을 시작한다.
까미노길에 오기 전의 바쁜 일상생활에서 생겼던 불안, 슬픔, 후회 등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 머리의 한쪽 구석에 숨겨두었던 감정들이, 수백 킬로를 걸으면서 우리 몸이 지치자, 머리가 깨어나면서 그 미뤄두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또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변화가 찾아온 시기에 이 까미노길을 찾는다고 한다. 이 두 번째 단계를 통해서 좀 호흡을 길게 하고 그동안 묵혀 두었던 감정을 꺼내서 그동안 바빠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른 참신한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충분히 공감이 갈 수 있는 설명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일단 내 머릿속이 그렇게 깊지도 않고, 복잡한 것은 그때그때 정리하지 않으면 변비가 생기는 스타일이어서 그런지 꼬불쳐 둔 감정이 별로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여전히 첫 단계인 체력적 단계를 못 벗어나서인지 그냥 힘들기만 하다. 아… 언제 두 번째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나, 개인의 성숙을 위한 정신적인, 영적인 여정 (The Spiritual Journey to Personal Growth on the Camino)”단계이다.
레온을 지나면 다시 산과 숲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구간의 가장 높은 지점인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를 지날 때부터는 우리 몸도 매일의 걷기에 익숙해지고, 우리의 감정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차분하다. 이제는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민거리 없이 온전히 주변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도 있다. 또한 복잡했던 머리가 비워졌으니 충분한 정신적 공간을 이용해서 좀 더 고상한 무언가를,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것을 할 준비가 됐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도 아플까? 나는 1단계라서? 그 다음부터는 정말 진짜 엄청 잘할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서 왜 나는 왜 2,3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문득 이런 고민을 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 보였다. 이렇게 단계로 나눠 줘야지 쉽게 이해하기 때문에 나누었을 뿐이지, 실제는 중첩되기도 반복되기도 하고, 거꾸로 가기도 하고, 3단계가 아니라 300단계로 나눠질 수도 있는데 이런 고민을 하다니? 꼭 1단계를 마쳐야만 2단계, 3단계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 것 같으니 제발 나처럼 이런 쓸모없는 우려는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알아서 나는 벌써 인생의 5단계를 넘어서 이미 6단계로 향하고 있으니….
[1] Meseta는 스페인어로 ‘고원’이라는 의미이고, 이베리아 반도 내륙에 넓게 퍼져 있는 고원지역을 말한다. 프렌치루트에서 Meseta는 부르고스와 레온 사이의 약 220km 길을 의미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