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너머에 남은 울음.
3억. 당당하게 불렀다.
하지만 안다. 그게 터무니없는 값이라는 걸.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고 나서,
한 집에서 아이들과 엄마까지 다 같이 지낸다는 건
숨이 막혔다. 공기가 무거웠다.
그렇게 하지도 않던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진작 말하지 그랬냐”는 말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삼킨 서러움과 상처를 쏟아냈다.
정식으로 입을 연 건,
그와 함께 이혼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였다.
서류, 절차… 이런 건 그가 더 잘 알았다.
그가 권유한 것 중 하나가 ‘이혼 상담’이었다.
날 이해해 달라는 게 아니었다.
살고 싶었다. 나답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놈은 “다시 생각해 봐 달라”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내 마음에 그는 없었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살 수 있다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아니.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다.
그의 조건은
친정엄마에게 부모초청비자를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비자 장사. 또 시작이었다.
그 비용이 적지 않다는 걸 알지만,
나는 비자를 빌미로
또 눈치 보며 살고 싶지 않았다.
딸로서 너무 미안했다.
결혼 후 지금까지, 엄마는 내 곁에서 버텨주셨다.
그런데 내가 비자 신청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이 굴레는 벗어나야 했다.
단 한 시도 그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내 이혼 의사를 확실히 밝히자,
그는 180도 달라졌다.
“아이를 포기 못하겠다.”
네가? 왜? 아이들을 돌본 적도,
같이 시간을 보낸 적도 없는 주제에?
그는 나에게 양육비를 주기 싫어서였다.
단 1불도 내가 쓰는 게 싫어서
양육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신 양육권을 가지면 양육비를 안 줘도 된다는
조건을 내밀었다.
하… 진짜 끝까지 날 구석으로 몰고 가는구나..
내가 부른 위자료, 3억. 너무 많다고 했다.
“그럼 재산분할소송할게”
“아이들 생각은 안 해? 이 집을 팔아서
널 주면? 아이들은 어디로 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거야!? “
아이들과 헤어짐은 내 계획에 1도 없었다.
양육권 얘기만 나오면 목이 메었다.
다 같이 도망갈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에 수습해야 할 사건들이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될까 두려웠다.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들만은 데려가지 말아 줘…
네가 가는 것도 모자라,
아이들까지 떠나면 버틸 수 없어.. “
그래. 그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좋은 남편은 아닐 거 같다.
난 더 이상 그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간단히 짐을 싸들고 집을 나왔다.
아이들을 친정엄마 품에 맡겼다.
문턱을 넘는 발걸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지만,
이대로 머물면 나도,
아이들도 더 깊은 늪에 빠질 것만 같았다.
뒷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서둘러 돌아섰다.
아이들이 “엄마” 하고 부를까,
그 한마디에 다시 무너질까 두려워서.
눈물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해서 떠나는 길이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제 이야기를 끝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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