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아래 드러난 민낯
햇살 아래 반짝이던 집은 오랫동안 내가 그려온 꿈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파국의 서막을 마주하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아이들과 하루라도 함께 지낼 수 있는 집을 구했다.
새 가구로 채우진 못했지만, 방 네 개에 2층짜리 넓은 집. 그리고 작은 마당까지.
완벽히 꿈꾸던 집이었다.
지출에 대한 부담은 잠시 뒤로 미뤘다.
아이들이 편히 쉴 공간이 필요했기에, 다른 문제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셰어하우스 입주자를 들여 부족한 금전을 채웠다. 그럼에도 나름 안정된 생활을 시작한 것 같아 행복했다.
그러던 중, 그의 비자 기간은 또다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회사에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마치 프레젠테이션처럼 나에게 늘어놓았다.
자신감에 차 있었지만, 곧 “비자 문제 때문에 진전이 어렵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내가 날개 달아줄게. 우리 해보자!”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대답을 건넨 순간,
그것이 곧 내 인생을 건 도박의 올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말이다.
곧 이민 대행사를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필요한 서류, 절차, 비용까지.
“속전속결로 진행해야 한다”는 말에 따라 일은 빠르게 흘러갔다.
비자는 그의 일이었지만, 그는 늘 바빴다.
결국 서류 작성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처음엔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는 돈에 치이고, 일에 지쳐갔다. 일주일 중 절반 이상은 접대 자리로 새벽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 속에서 의문이 쌓여갔다.
시드니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식당과 주점은 자정이면 닫는다. 맥주나 칵테일, 와인 정도만 파는 펍만 남는다.
그런데도 그는 늘 다른 이유를 댔다.
오늘은 거래처 때문이라 했고, 내일은 우연히 만난 지인 때문이라 했다.
“도대체 어디서 저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셨을까.”
내 의문은 깊어졌지만, 방법이 없으니 확인할 수도 없었다. 그저 답 없는 의심만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내 친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네 동생, 다시 시드니로 돌아와 내 일을 같이 해볼 생각 없을까?”
동생에게 이 직업에 대해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 권유를 했고 결국 아빠의 설득으로 동생은 시드니로 돌아왔다.
“잘 지냈어?~“
그날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멀리 있던 가족을 다시 만난 듯 가슴이 벅찼다.
같은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순간, 내 삶은 다시 가득 차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
그에게는 잘못된 계산이었을지 몰라도, 그 존재 덕에 나는 가스라이팅의 늪에 끝내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