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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우산동 래래반점 붉은 복글씨

by 마루

원주 우산동, 래래반점.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던 중,

벽 한쪽에 걸린 붉은 족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운데 크게 적힌 **福(복)**이라는 글자,

그리고 그 옆으로 흐르는 네 줄의 서예.


글씨는 매끄럽게 흘러가면서도,

마지막 획마다 힘이 남아 있었다.

마치 한 번에 적었지만,

수십 번의 마음 다짐이 쌓여 만들어진 글씨처럼.

그걸 바라보고 있는데

주방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화교 주방장님이

내 시선을 알아챘는지 말을 건넸다.


“그 글… 읽을 줄 압니까?”


나는 조금 머뭇이며 웃었다.


“글씨가 흘림체라 쉽진 않네요.

하지만… 읽어보겠습니다.”


주방장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중국 산동의 문인이 쓴 서예입니다.

가게에 걸면 복이 머문다고 해서

귀하게 모셔두고 있어요.”


나는 다시 족자를 천천히 읽었다.


健康是福 — 건강은 복이다.

平安是福 — 평안 또한 복이다.

舍得是福 — 비우고 베풀 줄 아는 마음, 그것도 복이다.

長樂是福 — 오래도록 즐거움이 이어지는 삶, 그것 역시 복이다.


그 문장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자주 잊고 사는 것들을

한 줄 한 줄 다시 일깨우듯 적혀 있었다.


그때 주방장님이 조용히 덧붙였다.


“사람들은 먼 데서 복을 찾습니다.

하지만…

복은 원래 가까이 있는 겁니다.”


나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리고 간짜장이 놓였을 때,

그릇 위로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 이 온기,

이 기다림,

이 순간 역시 —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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