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를 공부한다는 건, 말을 미루는 연습이었다

일본어공부

by 마루

일본어를 공부한다는 건, 말을 미루는 연습이었다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묻는다.

“어디 가려고?”

“비즈니스야, 여행이야?”

하지만 나에게 일본어 공부는

어디를 가기 위한 준비라기보다

말을 천천히 하게 만드는 연습에 가까웠다.

처음엔 단어부터 외웠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발음이 부드럽고 모서리가 없는 글자들.

의미를 알기 전부터

소리부터 귀에 남았다.

이상하게도 일본어 문장은

항상 끝까지 들어야 했다.

앞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마지막 한 단어에서

아, 이런 감정이었구나 하고

비로소 이해가 됐다.

그때 처음 느꼈다.

이 언어는

하고 싶은 말을 바로 꺼내지 않는 언어라는 걸.

한국어는 다르다.

우리는 생각이 정리되기 전에

이미 말을 시작한다.

주어를 밝히고, 감정을 설명하고,

왜 그런지까지 말해준다.

솔직하고 정확하다.

그래서 빠르다.

반면 일본어는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쯤 숨을 고른다.

“죄송합니다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조금만 괜찮으시다면”

이 말들은 의미만 보면

불필요하게 길다.

하지만 그 사이에

상대와 나 사이의 거리를 잰다.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

혹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문법보다 먼저 배운 건

애매하게 말하는 방법이었다.

확답을 하지 않는 법,

거절하지 않는 거절,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분위기를 깨지 않는 문장들.

처음엔 답답했다.

왜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할까.

왜 속마음을 숨길까.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언어가 노래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어 가사는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몰라도

감정이 먼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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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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