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 인스탁스 미니 에보 시네마
사진을 오래 해오다 보면, 장비가 좋아질수록 이상한 감정이 따라온다.
더 선명해지고, 더 정확해지고, 더 빨라질수록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점점 가벼워진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긴장,
노출을 고민하던 망설임,
결과를 기다리던 시간은
언제부턴가 화면을 쓸어 넘기는 동작으로 대체됐다.
지금의 사진은 너무 잘 찍힌다.
그래서인지, 너무 쉽게 잊힌다.
후지필름이 인스탁스 미니 에보 시네마 같은 카메라를 만든 이유는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느껴진다.
오히려 기술을 일부러 내려놓기 위해 만든 물건에 가깝다.
사진사 입장에서 보면,
이 카메라는 솔직히 부족하다.
센서는 작고, 해상도는 낮으며,
영상은 요즘 기준으로 말하기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그 부족함이
이 카메라의 핵심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15초라는 짧은 영상 제한,
거친 노이즈와 번짐,
의도적으로 남겨진 흔들림과 소리.
이건 실수라기보다 선택이다.
후지필름은 이 카메라로
“잘 찍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이건 기록이 아니라 경험이다.
사진을 업으로 해온 사람일수록
카메라를 꺼내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
일이 아닌 순간에는
굳이 또 프레임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카메라는 다르다.
일의 연장이 아니라,
놀이에 가깝다.
셔터를 길게 눌러 영상을 찍고,
마음에 드는 한 장면을 고르고,
인화 레버를 당겨 사진을 뽑는다.
그리고 그 사진에 붙은 QR 코드로
짧은 영상을 다시 본다.
이 과정에는 효율이 없다.
그래서 좋다.
사진사는 늘 결과로 평가받는다.
잘 찍었는지, 못 찍었는지.
의도가 전달됐는지, 완성도가 있는지.
하지만 이 카메라 앞에서는
그 기준이 무력해진다.
잘 찍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찍는 동안 즐거웠는지가 남는다.
아마 후지필름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
더 좋은 카메라를 만드는 건
이미 의미가 없다는 걸.
대신 사람들은
사진을 다시 ‘사건’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
손으로 만지고,
건네주고,
남겨두고,
다시 꺼내보는 것.
사진이 파일이 되기 전의 감각을
다시 한번 체험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카메라는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라기보다
사진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묻는 물건처럼 보인다.
사진사로서 이걸 메인 카메라로 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책상 한쪽에 두고,
일이 아닌 순간에 꺼내 들기에는
꽤 설득력 있는 이유가 있다.
완벽한 사진은 이미 너무 많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금 불완전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후지필름은 그걸 알고
이 카메라를 지금, 이 시점에 내놓았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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