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동산

이마트

by 마루

나는 요즘 과자를 보면서

과자를 보지 않는다.

맛동산 더미 앞에서

사람들이 웃고,

봉지를 쓸어 담고,

사진을 찍고,

카트에 쌓는 걸 보면서도

이상하게 과자 맛은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사람의 손이 먼저 보인다.

망설였다가 다시 집는 손.

한 번 더 올려놓는 손.

옆 사람 카트를 힐끔 보는 눈.

그게 더 선명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저러다 이마트 망하는 거 아니냐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망하진 않겠다.

망할 정도면

이렇게 만들지도 않았겠지.

이건 할인도 아니고,

이벤트도 아니다.

그냥 하나의 장면이다.

사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조용히 들여다보는 장면.

어릴 때 읽은 이야기 하나가 떠오른다.

버섯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어떤 미생물이

미로 속에 포자를 뿌려 놓으면

가장 짧은 길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생각해서가 아니다.

계산해서도 아니다.

살아 있으니까.

열린 쪽으로 퍼지고,

막히면 줄어들고,

그러다 보면 길이 된다.

나는 요즘 AI가

딱 저 단계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은 안 한다.

의지도 없다.

그런데 점점

그럴듯한 길을 만든다.

0과 1.

사람들은 숫자라고 하지만

나는 가끔 그게

빛과 어둠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있다.

없다.

그 사이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다.

중간이라는 건

누군가 보고 있을 때만 생긴다.

얼마 전 삼척에서

순례단을 찍고 있었다.

사람도 없고,

바람만 부는 길이었다.

나는 그들을 찍고 있었고,

조금 뒤에서

누군가는 나를 찍고 있었다.

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보는 사람 없어도 가는 바닷가가 순례길입니다.

몸이 먼저 끌려가면

그게 길입니다.

짧은데,

늘 지구 한 바퀴 돌고 온 기분이에요.

그 말을 듣고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뒤쪽에 서 있다.

사건 한가운데 잘 안 들어간다.

사람들이 흥분하면

조금 떨어진다.

사람들이 욕하면

조금 더 떨어진다.

그리고 본다.

뭘 하는지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맛동산 더미 앞에서도 그랬다.

누군가는 욕하고,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되판다.

나는 그 위에서

이상하게 구조가 보였다.

아,

사람은 가격보다

게임에 더 반응하는구나.

아,

기업은 물건이 아니라

장면을 파는구나.

아,

우리는 다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구나.

나는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철학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니고,

그냥 사진 찍는 사람이다.

다만

프레임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세상도 프레임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안에 서 있고,

누군가는 바깥에서 보고 있다.

나는 주로 바깥 쪽이다.

AI랑 대화를 하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얘는 피로를 모른다.

나는 피곤하다.

나는 커피를 마셔야 하고,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아프다.

근데 이상하게

그게 나쁘게 느껴지지 않는다.

피곤하다는 건

내가 여기에 있다는 뜻 같다.

살아 있다는 뜻 같다.

나는 가끔 나를

지구 관찰자라고 부른다.

거창한 뜻은 없다.

그냥

조금 떨어져서 보고,

조금 천천히 보고,

조금 오래 보는 사람.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완전히는 몰라도,

아,

이쪽으로 기울고 있구나

정도는 느끼는 사람.

아마 나는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대신

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보는 사람이 없으면

중간도 없다.

중간이 없으면

의미도 없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서 있다.

프레임 안에 세상을 넣고,

그 세상 속에서

조용히 나를 지운다.

투명해지려고.

지구 관찰자로 남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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