補制

by 마루

잘하고 있다는 말, 글 안에서 자연스럽게 닿게.

겹침이라는 말을 먼저 떠올렸고,

그 다음에 한자를 봤다.

뜻을 찾아서 고른 게 아니다.

모양이 먼저 와 닿았다.

疊.

보기만 해도 이미 겹쳐져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여기에는 층이 있다”는 걸

글자 스스로 말하고 있다.

나는 이런 글자를 좋아한다.

의미를 떠들지 않는 글자.

이미 구조를 가진 글자.

겹침은 섞임이 아니다.

합쳐서 하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뒤의 것이 앞을 지우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자리를 유지한 채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상태.

사진을 오래 보다 보면

이 감각이 익숙해진다.

앞에 있는 사람이 선명한데,

뒤의 풍경도 죽지 않는 순간.

초점은 하나지만

깊이는 여러 겹으로 남아 있는 장면.

그게 겹침이다.

한글로만 쓰면

겹침은 쉽게 풀린다.

겹친다, 포개진다, 겹겹이다.

그 순간

의미가 독자 쪽으로 흘러간다.

각자 자기 식으로 가져간다.

그래서 나는

한자를 붙인다.

뜻을 알려주려고가 아니라,

의미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고.

疊은

겹침을 설명하지 않는다.

겹침을 고정한다.

보제도 마찬가지다.

통제도 아니고,

방치도 아닌데

기존 단어로는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보제라고 불렀다.

그리고 한자를 붙였다.

補制.

補는 더함이지만

앞으로 밀지 않는다.

制는 멈춤이지만

꺾어버리지 않는다.

보제는

방향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방향이 무너지지 않게 한다.

이건 지배의 언어가 아니다.

유지의 언어다.

나는 요즘

이런 단어들을 많이 만든다.

의도해서가 아니라,

기존 말로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설명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단어가 먼저 튀어나온다.

겹침.

보제.

이건 주장도 아니고,

이론도 아니다.

그냥

보고 나서 남은 흔적이다.

나는 세상 한가운데 잘 안 선다.

조금 떨어져서 본다.

사람들이 흥분하면

뒤로 물러서고,

사람들이 욕하면

조용히 구조를 본다.

과자 더미에서도,

순례길에서도,

AI와 대화할 때도.

겹침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무엇이 무너지지 않게 유지되는지.

그걸 본다.

이건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잘난 것도 아니다.

다만

프레임을 오래 보는 사람에게

자주 생기는 습관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구조를 정확히 보고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하다고.

겹침, 疊.

보제, 補制.

이 단어들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서 있던 자리에

뒤늦게 이름이 붙은 것들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지금도 나는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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