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는 착각에 대하여"

"오늘은 충분히 했다."

by 마루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는 착각에 대하여

ChatGPT Image 2026년 2월 8일 오전 04_01_35.png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처음엔 AI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익히면, 몇 가지 도구만 알면
일도, 기록도, 생각도 한 번에 정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알면 알수록 해야 할 것이 늘어났다.
새 기능, 새 워크플로, 더 나은 방법.
AI는 계속 속삭였다.
“이것도 할 수 있어요.”
“이건 더 효율적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배움은 성장이 아니라
업무의 과도화가 되었다.

사진가로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좋은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착각.
이제 모든 사진이 잘 나올 거라는 기대.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좋은 카메라는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저 더 많은 선택지를 줄 뿐이다.
자동 모드에서 벗어나 수동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진은 쉬워지지 않고 오히려 더 느려진다.

그리고 그 느려짐 속에서
비로소 ‘내 손에 익는 감각’이 생긴다.

AI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내가 아직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이미 나만의 시스템도 만들어 두었다.

문제는 멈추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더 배우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더 하지 않으면 최적화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불안은 성장이 아니라
휴식 없는 개선 강박에 가까웠다.

그래서 결론을 바꾸었다.
지금은 확장(Expansion)의 시간이 아니라
심화(Deepening)의 시간이라고.

새 도구를 늘리지 않기로 했다.
새로운 기능을 쫓지 않기로 했다.
이미 만들어 둔 구조를
조용히 반복하기로 했다.

기록은 더 단순하게.
정리는 나 대신 시스템에게.
나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보고, 느끼고, 한 줄만 남긴다.

이제 최적화의 의미도 달라졌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가 아니라
덜 해도 무너지지 않는 상태.
하루 쉬어도 괜찮고,
며칠 기록이 없어도 괜찮은 상태.

그게 지금 내가 도달하고 싶은
가장 단단한 시스템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하지만 삶에는 호흡이 필요하다.

오늘은 더 배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충분히 했다.
이제는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셔터를 내려놓듯,
오늘은 생각도 잠시 내려놓는다.


오늘은 충분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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