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양도 앞에서, 초점은 항상 늦게 맞춰진다

Brightin Star 50mm F1.05

by 마루

비양도 앞에서, 초점은 항상 늦게 맞춰진다

1. 2026년의 셔터, 그리고 비현실적인 숫자

내가 뷰파인더 너머의 세상을 응시하며 깨달은 것은, 결국 사진은 ‘빛을 가두는 행위’라는 점이다.

기술의 진보는 찰나를 가로채는 초고속 AF 시대를 열었지만, 때로는 그 영리함이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의 밀도 있는 대화를 방해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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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순간, 사진가의 호흡은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그런 내 여행 가방에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렌즈 하나를 넣었다.

Brightin Star 50mm F1.05. 숫자부터 비현실적이다.

F1.05라는 수치는 단순히 조리개가 밝다는 의미를 넘어, 렌즈가 빛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다’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풀 메탈 바디의 차가운 질감과 묵직한 무게감. 손끝에 전해지는 초점 링의 저항감은 수동 렌즈만이 건넬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물리적 대화’다.


2. 빛을 피하지 않고, 빛을 쓰는 법

보통 F1.4 아래의 영역에서 사람들은 화질에 대한 기대를 접는다.

‘개방은 감성용’이라며 색수차와 소프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렌즈는 그 상식을 정면으로 부순다. F1.05의 최대 개방에서도 중심부는 놀랄 만큼 또렷하다.

무엇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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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건 이 렌즈의 개성이다.

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나타나는 둥근 무지개 빛 플레어. 누군가에겐 피해야 할 광학적 오류일지 모르나, 나에게는 사진을 설명하지 않고 감정을 만들어주는 도구다.

15장의 조리개 날이 만들어내는 30갈래의 빛 갈라짐은 밤의 풍경을 시네마틱한 무대로 바꾼다.

이 렌즈는 내게 말한다. “빛을 피하지 말고, 빛을 써라”라고.


3. 비양도, 초점이 늦게 맞춰지는 이유

봄의 제주, 비양도 앞바다.

바다는 그날따라 투명한 청록색이었다.

나는 이 렌즈로 배경을 흐리고 빛이 깨지는 지점을 찾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Excuse me…”

미국인 남자였다. 옆에는 한국인 여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번역 앱을 보여주었다.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는 메시지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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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렌즈는 자동 초점이 아니에요. 조금 시간이 걸립니다.”

남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오늘은 시간이 많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비양도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로 이동하던 순간, 남자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프러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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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렌즈를 통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손은 바빠졌지만 마음은 고요해졌다.

F1.05의 극도로 얕은 심도에서 초점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다.

숨이 조금만 흔들려도 모든 게 날아간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초점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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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의 감정이 무르익고, 사진가가 그 진심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숭고한 과정. 그때 렌즈 안에서 미세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아마 모래알 하나였을 것이다. 기계적인 상처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현장의 리얼리티로 남았다.


4. 사람이 준비될 때 완성되는 사진

나는 셔터를 눌렀다. 강한 오후 햇살이 쏟아지자 둥근 무지개 플레어가 두 사람을 감싸 안았다.

그 사진에는 완벽한 선명함 대신 조금 흐린 초점과 깨진 빛,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를 믿고 있는 ‘시간’이 담겼다.

촬영이 끝나고 남자는 내 손을 꼭 잡고 고마움을 전했다.

나는 카메라를 내리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렌즈는 사람이 준비되기 전에 사진이 먼저 완성되지 않거든요.”

사진은 설명이 사라질 때 가장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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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만 원대라는 믿기지 않는 가격의 이 렌즈는, 차가운 기술의 집약체이면서 동시에 사진가의 뜨거운 감성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찰나를 기다릴 줄 아는 사진가라면, 이 렌즈는 가방 속에서 가장 개성 있는 시선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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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진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준비될 때 완성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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