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씨알의 궤적 ― 은(銀)의 접합점

은(銀)의 접합점

by 마루



제1부. 렌즈 앞에 선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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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외곽, 7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몇 번이나 창문을 내렸다.
비릿한 흙냄새와 매연이 섞인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오래된 것과 지금의 것이 아무 구분 없이 섞이는 냄새였다. 이런 냄새를 맡을 때면, 나는 언제나 카메라를 들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충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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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오렌지 필름.’

낡은 로고가 박힌 가방을 어깨에 걸고 괘릉 숲으로 들어섰다. 소나무들은 곧게 서 있지 않았다. 하나같이 비스듬히 몸을 틀고 있었고, 그 기울어진 몸들이 만들어내는 세로의 리듬은 마치 오래된 악보 같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무들은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때마다 숲은 낮게 숨을 쉬는 것처럼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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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로, 돌 하나가 튀어나와 있었다.


무인상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뷰파인더를 눈에 갖다 댔다. 자동 초점은 꺼두었다. 이런 얼굴에 자동은 무례했다.

초점 링을 천천히 돌리는 동안, 돌의 표면이 선명해졌다.

풍화된 이마, 깊게 패인 눈두덩, 부리부리하게 튀어나온 눈매.


그 눈을 마주친 순간, 묘한 착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보는 게 아니라, 그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


돌의 눈꺼풀 안쪽에서, 누군가가 아주 미세하게 눈을 깜빡인 것 같았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찰칵—
디지털 센서가 반응하는 그 짧은 순간, 화면에 맺힌 것은 형태가 아니었다.

0과 1로 환원되지 않는 무언가가 끼어들었다.

눅눅한 슬픔. 오래 눌러 담아둔 후회. 말하지 못한 언어의 잔향.


바람이 불었다.
소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이 무인상의 얼굴을 스쳤고, 그때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귀 안쪽을 긁었다.


‘…들리는가.’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래 혼자 촬영을 해온 탓일까.


나는 LCD 화면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신, 무인상의 주먹을 보았다.

꽉 쥐어진 손. 그 틈 사이로 돌의 결이 비집고 나와 있었다.

무엇인가를 쥐고 있다가 끝내 놓지 못한 손처럼 보였다.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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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사막에서 건너온 손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서쪽에서 왔다는 것, 그리고 금속을 다루는 손을 가졌다는 것만이 전해진다.


사막의 도시에서 그는 태어났다. 붉은 흙과 불의 도시. 대장간의 공기는 늘 뜨거웠고, 어린 시절부터 그는 불 앞에 서 있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금을 다루는 사람이었다. 금은 잘 팔렸다. 반짝였고, 욕망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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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가이자 감정기록자입니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진한 침묵, 장면보다 더 오래 남는 감정을 기록하고 싶어서 카메라와 노트북를 늘 곁에 두고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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