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

마지막 회-무지개 다리 건너서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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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끝에서》

또 봄이 왔다. 벚나무 가지마다 연한 분홍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의 봄은 어딘가 다르게 보였다.

박정우는 천천히 바구니를 안고 공원으로 나섰다. 초롱이는 이불에 조심스럽게 감싸여 있었다. 짧은 숨소리가 그의 품 안에서 고르게 이어졌다.

늘 앉던 벚꽃나무 아래 돗자리를 깔았다. 박정우는 조심스럽게 초롱이를 바구니에서 꺼내 이불 위에 내려놓았다.

바람이 가볍게 초롱이의 귀끝을 흔들었다. 초롱이는 희미하게 눈을 떴다. 그리고 천천히 박정우를 올려다보았다.

"올해도 왔구나.우리 봄이 또 왔어."

박정우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초롱이는 작게 숨을 쉬며 미약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가 삶은 닭가슴살을 조심스럽게 잘라 그 앞에 내려놓았다. 초롱이는 고개를 조금 들려 했지만, 목이 떨려 제대로 들지 못했다. 그 대신 박정우의 손등을 미약하게 핥았다.

이전에는 종종걸음으로 걸어 나가던 산책로. 올해는 초롱이의 발이 땅을 딛지 못하고 있었다.

박정우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아직 함께다.’

바람결에 꽃잎이 흩날렸다. 초롱이의 희끗해진 머리 위로 가볍게 꽃잎이 내려앉았다. 박정우는 손끝으로 살며시 털어주었다.

그 순간, 초롱이는 다시 미약하게 꼬리를 움직였다. 그 작은 흔들림이 박정우의 가슴을 아리게 두드렸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박정우는 돗자리에 앉아 초롱이 옆에 조용히 기대 앉았다. 둘의 그림자가 봄 햇살 아래 나란히 길어졌다.

"다음 봄에도… 또 올 수 있을까?"

박정우의 입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머물러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그날의 봄볕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벚꽃은 천천히 흩날리며 두 생명을 감싸고 있었다.


《마지막 산책》

그날은 유난히 빛이 부드러웠다. 밤새 내린 봄비는 이미 자취를 감췄고, 하늘엔 얇은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박정우는 천천히 이불을 걷어 올렸다. 그의 시선이 머문 자리에서 초롱이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결은 가늘고 얇았다. 가슴께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오르내렸다.

"오늘은… 바깥에 나가볼까."

그의 목소리는 바람보다 가늘었다. 초롱이는 한두 번 힘겹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마저도 곧 멈췄다.

박정우는 조심스럽게 초롱이를 품에 안았다. 담요 위로 아내의 오래된 스카프를 덮어주었다. 문을 열자, 봄의 공기가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다. 차가움도 따스함도 아닌, 그 중간쯤의 온기였다.

전동 휠체어가 천천히 움직였다. 속도는 느렸지만, 마음은 조용히 앞질러 있었다 .늘 함께 걷던 공원으로 향했다.

벚나무들은 꽃을 터뜨린 채 조용히 머물러 있었다. 꽃잎 몇 장이 흘러내려 초롱이의 희끗한 이마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박정우는 손끝으로 살며시 꽃잎을 털어주었다. 초롱이는 눈을 감으며 그의 손길에 얼굴을 살짝 기댔다.

"올해도… 봄이 왔네. 참 오래… 잘 버텨줬구나, 우리 초롱이."

목이 저릿하게 메어왔지만, 그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익숙한 벤치 옆, 언제나 돗자리를 깔던 그 자리. 그는 담요를 펴고 초롱이를 조심스럽게 눕혔다. 초롱이는 숨을 가누며 몸을 맡겼다.

숨결은 느려졌고, 가슴의 움직임은 점점 간격을 벌려갔다. 짧은 혀끝이 마지막으로 입술을 적셨다.

박정우는 초롱이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체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초롱이는 그의 손길을 따라 얼굴을 더 깊이 파묻었다.

"이제… 얼마나 더 버텨줄 수 있는지, 나도 안다."

그 말은 아주 조용히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세상은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그 둘은 서서히 그 너머로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초롱이의 호흡이 점점 옅어졌다. 가슴이 미약하게 떨리다, 마침내 멈췄다. 짧은 꼬리가 마지막으로 한 번, 아주 조심스럽게 흔들렸다.

박정우는 조용히 얼굴을 숙여 초롱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고맙다, 초롱아… 정말 고맙다. 이렇게 오래, 내 곁에 있어줘서."

그가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견딜 수 있게 된 건, 이 아이가 그의 발 옆에 앉기 시작한 이후였다.

그의 손은 여전히 귀끝을 쓰다듬고 있었다. 초롱이의 마지막 숨결이 그의 손바닥에 고요히 스며들었다.

박정우는 초롱이를 가슴께에 안았다. 그의 심장도 느릿한 박동을 이어가다가 점점 더 얇아지고, 더 길어지다가 이윽고 조용히 멈춰섰다.

햇살은 두 존재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시간은 그곳에 머물러 있는 듯 고요했고, 벚꽃잎은 여전히 천천히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 한 점 없는 그 자리. 서로의 온기가 마지막까지 스며든 채로, 오래도록 서로의 전부였던 박정우와 초롱이는,서로의 마지막 온기를 품은 채 봄빛 아래 조용히, 마치 꿈처럼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여운의 마무리》

다음 날 아침. 공원 관리인이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서졌다.

공원 벤치 옆 전동 휠체어가 조용히 멈춰 서 있었다. 그는 다가가 조심스럽게 소리 없이 숨을 삼켰다.

휠체어 위에는 서로를 꼭 안은 채 잠든 두 생명이 있었다. 그들은 마치 아주 오래도록 그 자세로 머물러 있었던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초롱이의 작은 머리가 박정우의 가슴께에 기대 있었다. 그의 손끝은 여전히 초롱이의 귀를 쓰다듬던 모양으로 멈춰 있었다.

햇살은 두 존재를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만 흐르는 듯했다.

며칠 뒤, 조용한 작은 납골당. 복지사가 두 존재의 사진이 함께 담긴 작은 유골함 앞에 꽃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잠시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술을 달싹였다.

"끝까지… 지켜주셨네요."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게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책상 서랍에서 발견된 박정우의 오래된 수첩 한 귀퉁이.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적혀 있었다.

"나는 누군가를 끝까지 지켜본 적이 없었다. 이번에는… 끝까지 함께 있었다."

짧은 글씨가 서툴게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모든 시간이 담겨 있었다.

창밖으로 봄바람이 살며시 불었다. 벚꽃잎 몇 장이 조용히 허공을 떠다니다가 이내 바닥에 내려앉았다. 햇살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두 발과 네 발》

한 발, 그리고 한 발

나는 성큼성큼 걸었고 너는 총총총총 짧은 다리로 나를 따라왔지

내 걸음이 두 배쯤 커도 넌 언제나 내 곁에 있었어 늘 조금 바쁘게 늘 조금 귀엽게

길 위의 햇살이 따뜻하던 날들네 귀는 바람에 흔들리고 너의 발자국은 내 그림자 안에 조용히 겹쳐졌지

나는 앞을 보고 걸었지만 사실은 너를 기다렸고

너는 옆에서 걷고 있었지만 늘 내 마음 앞에서 먼저 달렸지

우리는 그렇게 ,두 발과 네 발로 하나의 박자를 만들며 봄을 걸었다

그리고 그날 너는 발걸음을 멈췄고 나는 너를 안아 햇살 속에 조용히 멈춰섰다

이제는 네 발자국이 더 남지 않지만 나는 여전히 내 걸음 아래서 네가 따라오던 소리를 듣는다

총총, 총총

너는 그렇게 내 삶의 가장 예쁜 소리였다. 끝.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